이종원 와세다대 교수.
이종원 와세다대 교수 인터뷰
동북아 외교 움직이고 있는데
한일 정상 못 만나는 건 비정상적
양국간 역사문제 로드맵 만들어
해결할 외교과제 명확히 해야
동북아 외교 움직이고 있는데
한일 정상 못 만나는 건 비정상적
양국간 역사문제 로드맵 만들어
해결할 외교과제 명확히 해야
현재 한일관계의 출발점인 한일기본조약(한일협정)이 내년이면 체결 50년을 맞는다. 그러나 양국 관계는 1965년 국교 수립 이후 최악으로 불릴 만큼 악화돼 있다. 동아시아 지정학적 질서의 변동이라는 구조적인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의 민주화나 일본 사회의 보수화 등 한일 양국 내부의 변화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 해법은 뭘까. 이종원 와세다대 교수(와세다대 한국학연구소장)는 11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는 양국간의 역사문제 가운데 무엇이 처리됐고, 어디까지 가야 해결인지 외교적인 과제를 명확히 하는 일종의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일본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담판을 벌이는 결의를 보일 필요도 있다”고 제안했다.
-현재 한일관계가 악화된 원인은?
“동아시아에선 2010년대로 접어들며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로 상징되는 커다란 구조적인 변화가 진행됐다. 2010년 중-일 경제 규모가 역전됐고,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해 일본이 큰 타격을 입었다. 안 그래도 일본인들이 감정적으로 취약해진 상황에서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했다. 그런 눈에 띄는 행동이 일본의 감정적인 반발을 불러왔다. 그동안에도 한일 간에는 위안부 등 역사문제와 독도 등 영토문제를 놓고 첨예한 대립이 있었다. 그러나 갈등 요인만을 보자면 중-일 관계에 비할 정도는 아니다. 현재 중국이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주변에서 힘을 배경으로 현상 변경을 시도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양국 간에는 언제든 우발적인 충돌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일본 언론이나 여론의 반응은 중국보다 한국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이 많다. 관계의 실체는 중-일이 더 심각하지만, 한-일 갈등이 실체 이상으로 감정화된 상황이다.”
-현재 한-일간 최대 현안은 위안부 문제다. 그러나 이 문제를 추궁하다 보면, 한일협정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힌다. 일본이 한일협정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 문제뿐 아니라 위안부 문제까지 종료됐다는 견해를 고수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한국 국내적으로는 한일협정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국 민주화라는 큰 틀에서 보면, 한일협정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정치적인 타협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오는 것은 국내 민주화의 흐름에서 보면 하나의 필연적인 귀결일 수 있다. 다만 그게 외교현장에서 어떻게 실현이 될까 하는 게 큰 난제다. 일각에선 한일협정 자체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으니 협정을 전면적으로 재검토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논리적으로는 있을 수 있는 선택이다. 다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도 생각해야 한다.
1990년대 이후 한일 양국 정부가 추진해 온 것은 이른바 협정의 ‘보완론’이었다. 1965년 한일협정의 많은 문서 중에 역사 문제에 대한 언급은 기본적으로 없다. 한일기본조약 전문엔 역사라는 단어가 ‘양국 국민 관계의 역사적 배경’이라는 추상적인 표현으로 처리되고 있을 뿐이다. 이를 보완한 게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내놓은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다. 이 선언에서 일본은 1995년 무라야마 담화의 표현을 인용해, 식민지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뜻을 담았다. 또 2010년 간 담화에선, 한국에서 보면 부족한 표현이지만, ‘식민통치가 한국인의 의사에 반해서 행해졌다’는 구절이 들어갔다. 일본에서도 식민지배에서 유래하는 불법행위인 △위안부 문제 △사할린 잔류 한인 문제 △재한 원폭 피해자 문제 등의 해결을 위해 1990년대 이후 여러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한일 관계의 상징이면서 실제적인 핵심인 위안부 문제에 대해 2012년 일본 민주당 정권이 해결책을 마지막까지 모색하다 실패해 지금의 파국에 이르고 말았다. 한일협정을 폐기하고 다시 체결한다는 게 현실적인지, 그로 인한 비용은 무엇인지 종합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명확한 입장이 없다.
“위안부 문제 외에 한-일 간의 또 다른 난제는 한일협정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이 소멸된 게 아니라는 지난 2012년 5월 대법원 판결이다. 이 판결은 한-일 간의 남은 문제는 위안부 문제 등뿐이라는 한국 정부의 기존 입장과도 충돌하는 것이다. 대법원의 획기적인 판결로, 한국 정부가 한일관계 전반에 대해 더 총체적으로 판단해 논리를 정립할 필요가 생겼다. 한국 정부는 양국간 역사문제 가운데 과연 뭐가 처리됐고, 어디까지 가야 해결인지 외교적인 과제를 명확히 하는 일종의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게 없이 정권 교체 등에 따라 문제가 산발적으로 방치돼 왔다. 문제가 방치되니 해결을 요구하는 사회 여론이 강해지고, 그러다 보니 (대법원 판결 같은) 한층 더 강한 조처들이 나오고, 그게 다시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든다. 한국 정부가 역사 문제에 대해 체계적인 접근을 못하고 문제를 방치해 문제를 키우는 흐름이 최근 몇년 동안 이어져 왔다고 본다.”
-위안부 문제 등의 해결이 아베 정권 아래서 가능할까.
“아베 정권은 지난 민주당 정권보다 우경화, 보수화된 정권이기 때문에 상당히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미국의 압력도 있기 때문에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선 성의를 보여 한일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의견이 아베 정권 내에도 좀 있는 것 같다. 아베 정권은 (위안부 동원 과정의 군 개입과 강제성을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에 흠집을 내면서도 계승한다고 말은 한다.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한일협정 체결 50주년을 맞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기 때문에 한일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지, (한일 협정으로 형성된) ‘65년 체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등에 대해 지혜를 짜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현재 우리 정부가 내놓고 있는 한일 관계 개선의 조건은 일본의 국가 책임을 전제로 한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다. 우리는 남북관계도 개선해야 하고, 중국과의 관계도 확대해야 한다. 지금 동북아 외교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한일 외교장관이나 양국 정상이 거의 만나지 못하는 현실은 외교적으로 비정상적인 비상사태다. 외교적인 지혜를 짜내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전망이 보인다고 하면, 이를 위해 정상회담도 추진해야 한다.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통해 담판을 하는 결의도 보일 필요가 있다. 박근혜 외교는 대미, 대중 관계에선 무난하게 관리를 했지만, 남북관계나 한일 관계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는 아직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 박 대통령의 임기 중에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려면 현재의 공백을 메우고 다시 출발점으로 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3년이란 시간은 이미 충분치 않다.”
-현재 동아시아에서 진행 중인 또 다른 변화는 아베 정권의 대북 접근인데.
“아베 총리는 ‘납치 문제의 궁극적 해결은 북한 체제가 바뀌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애초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를 중시하는 입장이 아니다. 그러나 총리가 됐으니 역사적인 업적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완전한 해결은 힘들겠지만, 70~80% 정도의 눈에 보이는 큰 성과나 진전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려면 북한이 일본에게 ‘보따리’를 풀어줘야 한다. 좁혀서 말한다면 핵심은 9월 초에 나올 것으로 보이는 1차 보고서에 포함된 납치 피해자의 추가 생존자 숫자와 내용이다. 그러나 북한은 국교정상화나 이에 준하는 관계개선을 일본에 요구하며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저울질할 것이다.
다만, 스톡홀름에서 이뤄진 5·29 합의를 보면 여러 가지 특징이 눈에 띈다. 첫번째는 평양선언을 재확인한 것이다. 애초 아베 총리는 평양선언에 반대한 사람이다. 또 하나는 납치 문제 검증을 위한 ‘일본측 관계자의 북한 체재’등의 표현이 나온다. 일본 정부 관계자가 북한에 상주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돼 북한의 연락사무소 역할을 하는 것처럼 읽힌다. 마지막으로 북-일간의 현안을 납치 문제뿐 아니라 일본인 묘지에 대한 성묘에서부터 납치 문제까지 ‘인도적 문제’로 확장시켰다. 이렇게 되면 남북간의 이산가족 상봉처럼 북핵 문제에 대한 유엔(UN)의 국제적인 제재 아래서도 북-일이 지속적으로 외교적인 접촉을 할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도 중국을 활용한 대북 압박이 사실상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본을 통한 6자회담 재개 등에 관심이 있을 수 있다. 북한도 일본에 기대하는 게 있기 때문에 현재는 돌출행동을 하기 어렵다. 현재의 북일 접근이 상황관리적인 면에서 역할을 하는 측면도 있다.”
-한국 외교의 또다른 큰 과제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일본이다.
“아베 정권은 7월1일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헌법 해석을 변경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한반도와 주변 지역 안보 문제에 일본이 군사적으로 어떻게 관여할지는 유동적이고 불투명한 부분이 많아 추측하기 어렵다. 안보 문제는 전략적 애매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 게 더 큰 카드가 된다. 분명한 사실은 한반도 또는 주변에서 급변 사태가 벌어졌을 때 일본이 안보적 측면에서 관여할 수 있는 일종의 정책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사실이다. 즉, 한국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큰 카드를 쥐게 된 것이다. 게다가 미국이 ‘아시아 중시’를 말하면서도 재정악화 등으로 일본의 역할 확대를 장려하고 있다는 게 객관적인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한반도 주변의 안보 문제에 대해 일본이 관여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이를 어떻게 배제해야 할지 우리가 상당히 큰 과제를 떠안게 됐다. 이를 위한 필사적인 노력과 지혜가 필요한 상황이다.”
도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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