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9월27일 도쿄 미국대사관에서 더글러스 맥아더 연합군 사령관과 히로히토 일왕(오른쪽)이 함께 찍은 사진. AP 연합뉴스
일, 쇼와 실록 24년만에 공개
침략과 패전, 전후의 극적인 경제부흥으로 이어진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히로히토 일왕의 시대를 기록한 ‘쇼와천황실록’이 24년 만에 공개됐다. 일왕의 ‘전쟁 책임론’에 대해선 굳게 입을 닫은 채 ‘평화 일왕’의 이미지 만들기에 충실한 실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궁내청은 9일 1926년 즉위 뒤 만주사변(1931년), 태평양전쟁(1941년), 패전(1945년)을 거치며 1989년까지 왕위에 머물렀던 히로히토 일왕(1901~1989)의 생애를 담은 실록을 완성해 공개했다. 일본 신문들은 이날 관련 기사를 4~5면씩 할애해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등 히로히토 일왕 사후 24년 만에 발간된 실록에 큰 관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번 실록은 일본의 개전과 항복 과정에서 일왕이 담당한 역할, 11번에 걸친 더글러스 맥아더 연합군 최고사령관과의 회담 내용 등 그동안 쇼와(히로히토의 연호) 역사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문제들에 대해 분명한 답을 제공하지 않았다. 일본 언론들도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인용해 “쇼와사에 대한 기존 통설을 뒤집는 새 발견은 없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일왕의 전쟁 책임 등 그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가능한 부분을 애매하게 처리해 일왕이 ‘일본 평화의 상징’임을 강조하려한 궁내청의 의도가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예가 1945년 9월27일 맥아더 사령관과의 1차 회견에서 히로히토 일왕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전쟁의 모든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으로 나 자신을 맡기러 왔다”는 발언에 대한 서술이다. 이는 맥아더가 자서전에서 언급한 내용으로 전쟁이 끝난 직후 히로히토 일왕이 자신의 전쟁 책임을 명확히 인정한 발언으로 주목받아왔다. 그러나 실록은 일본 정부의 공식 기록에선 이 발언을 확인할 수 없었다며 일왕의 발언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또 1947년 9월19일 히로히토 일왕이 ‘미국이 일본 본토 점령을 끝낸 뒤에도 오키나와를 통치하는 것을 희망한다’고 말한 ‘오키나와 메시지’, 1978년 10월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을 위해 방일한 덩샤오핑 당시 중국 부주석에게 한 것으로 알려진 사죄 발언 등도 “분명히 사실로 확인된 것만 쓴다”는 궁내청의 방침에 따라 일왕의 공식 발언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반면 1945년 8월9일 오전 9시37분 소련이 참전했다는 보고를 받은 지 18분 만에 히로히토 일왕이 종전을 지시했다는 점을 적시하는 등 일본의 평화를 위해 일왕이 담당한 역할을 적극 강조했다.
이날 공개된 쇼와실록은 전체 61책 1만2000쪽으로 구성돼 있으며 히로히토 일왕 사후 24년 5개월의 작업을 거쳐 완성됐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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