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환경단체 “좋은 사례 될 것”
정부가 석면의 위험성을 알고도 제때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면 석면 피해에 국가의 책임이 있다는 일본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앞으로 한국 등에서 진행되는 석면 피해 소송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일본 대법원은 9일 오사카부 남부의 센난 지역의 석면 방적공장 종업원과 유족 89명이 낸 소송에서 “국가가 석면이 인간의 신체에 끼치는 의학적 위험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규제를 하지 않았다”며 원고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마이니치신문>은 10일 “일본 대법원이 석면 피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판결 내용을 보면, 일본 정부가 석면이 인간의 건강에 끼치는 악영향을 확인한 것은 1958년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정부가 노동자들의 석면 피해를 막기 위해 구체적 조처를 시작한 것은 13년이 지난 1971년이 되어서였다. 이후 분진 농도규제강화(1988년), 분진 마스크 착용 의무화(1995년) 등의 조처를 쏟아냈지만, 석면에 장시간 노출된 노동자들은 폐암, 석면진폐와 같은 불치의 질환을 얻은 된 뒤였다.
대법원은 1958년이면 일본 정부가 작업장에 배기장치를 설치할 수 있는 충분한 기술이 보급돼 있어 이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할 수 있었는데도 13년 동안이나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국가 책임을 인정했다.
이번 판결에서 승소한 원고들 가운데는 재일 한국인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이들은 일제 식민지 시기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지역에서 살다가 전쟁 뒤 센난 지역의 석면공장에서 일해온 이들이다.
한국의 환경운동 단체들도 이번 판결을 반겼다. 환경운동연합은 이날 성명에서 “이번 판결은 일부 한계가 있지만 석면 피해 배상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초유의 사례로 평가돼 석면 추방과 피해자 구제운동에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에서 제기된 비슷한 소송에서 한국 법원은 회사의 책임은 일부 인정했지만 정부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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