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에 나온 첫 위안부보고서
국제사회에 일 책임론 심어줘
“아사히 요시다증언 오보” 내세워
가장 먼저 표적 삼아 수정 요구
보고서 쓴 쿠마라스와미는 ‘거절’
‘위안부는 성노예’ 본질 변함없어
국제사회에 일 책임론 심어줘
“아사히 요시다증언 오보” 내세워
가장 먼저 표적 삼아 수정 요구
보고서 쓴 쿠마라스와미는 ‘거절’
‘위안부는 성노예’ 본질 변함없어
일본 정부가 ‘위안부는 성노예였다’는 국제 사회의 상식을 뒤엎기 위해 본격적인 여론전에 돌입했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유엔 인권위원회 등 국제 인권기구가 최초로 내놓은 보고서인 1996년 ‘쿠마라스와미 보고서’를 첫 공격 대상으로 정하고, 보고서의 일부 내용에 대한 철회를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16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지난번 <아사히신문>이 위안부 보도와 관련한 과거 보도가 오보라며 취소한 사실이 있었기 때문에 이 내용을 라디카 쿠마라스와미 전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인권위원회 여성폭력문제 특별보고관 본인에게 설명하고 보고서에 나온 당시의 견해를 수정하도록 요구했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8월 초 일본군 관헌이 제주도에서 “조선인 여성들을 사냥하듯 강제연행했다”는 이른바 ‘요시다 증언’을 인용한 기사들이 오보임을 인정하고 해당 보도를 취소한 바 있다. 이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3일 “국가 전체가 (여성을) 성노예로 삼았다는 근거 없는 중상이 세계에서 행해지고 있다. 정부는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해 일본이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전략적인 대외 홍보를 강화해갈 것”이라고 선언하는 등 ‘일본의 명예 회복’ 주장이 들끓고 있다.
일본 정부가 쿠마라스와미 보고서를 첫 표적으로 삼은 것은 이 보고서를 시작으로 국제사회에서 “위안부는 국제인권기구의 기준으로 볼 때 분명한 성노예”였으며,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지고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상식이 정착됐기 때문이다. 이후 유엔 인권소위원회의 맥두걸 보고서(1998년) 등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과 배상’을 요구하는 보고서·권고가 잇따랐고, 2007년 7월 미국 하원에서 “일본 정부가 젊은 여성들을 강제 성노예로 만든 사실을 인정하고, 역사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한혜인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원은 “일본 정부는 쿠마라스와미 보고서에 흠집을 내면 위안부는 성노예였다는 국제사회의 상식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의 요구에 대해 쿠마라스와미 전 보고관은 거부의 뜻을 밝혔다. <요미우리신문>은 16일 일본 외무성의 사토 구니 인권인도담당대사가 14일 오전 미국 뉴욕에서 쿠마라스와미 전 보고관에게 요시다 증언을 인용한 부분 등 보고서 일부 내용의 철회를 요구했지만, 당사자로부터 “(요시다 증언은 보고서 작성에서 활용한) 증거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부 의사를 전달받았다고 보도했다. 스가 장관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상대 쪽이 수정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며 “앞으로 유엔 인권이사회 등 국제사회에서 적절한 기회를 잡아 일본의 생각을 끈질기게 설명해 이해를 얻어가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국제적인 공세를 이어나가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한 셈이다.
와타나베 미나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WAM) 사무국장은 <한겨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쿠마라스와미 보고서에서 요시다 증언은 일부에 불과해 이것이 사라져도 ‘위안부는 성노예’라는 결론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며 “일본 정부의 시도가 결국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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