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부치 유코 일본 경제산업상이 20일 아베 신조 총리에게 사표를 제출한 뒤 연 사퇴 기자회견에서 허리숙여 인사하고 있다. 오부치 경제산업상은 불법 정치자금 스캔들에 휘말리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도쿄/EPA 연합뉴스
오부치 산업상·마쓰시마 법무상
신임 여 각료 5명중 극우 아닌 2명
타격 입은 아베 “국민에 깊이 사과”
신임 여 각료 5명중 극우 아닌 2명
타격 입은 아베 “국민에 깊이 사과”
“정치자금 보고서의 기재 내용에 대해 많은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원래 진행해야 할 (국회) 심의에 큰 영향을 줬다는 사실을 깊이 받아들입니다. 소동을 벌인 데 대해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20일 오전, 임명된 지 한달 반 만에 ‘사퇴 기자회견’을 진행하던 오부치 유코(40) 일본 경제산업상의 표정엔 짙은 아쉬움과 회한이 담겨 있었다. 특히 “아베 정권이 추진하던 ‘여성이 빛나는 사회’ 만들기에 아무런 공헌도 하지 못하고…”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목소리에 물기가 배어 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눈물은 보이지 않은 채, 이를 악물고 가자회견을 마쳤다.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의 딸로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감’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오부치 경제산업상에겐 다시 회복하지 못할 수도 있는 정치적 시련의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4시간여 뒤. 이번엔 마쓰시마 미도리(58) 법무상이 기자회견 연단에 올랐다. 역시 사퇴 회견을 위해서였다. 마쓰시마 법무상은 “많은 생각을 했지만, 법무상의 중책을 안고 아베 내각의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지난 9월 초 개각에서 두 각료는 아베 내각이 내건 중요 과제인 여성 활약의 상징으로 기용됐다. 잇따른 여성 각료의 사임으로 정권에도 상당한 충격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달 3일 개각에서 역대 최다인 5명의 여성 각료를 임명했다.
두 여성 장관 낙마의 도화선은 지난 16일 <주간 신조>(슈칸 신초)의 보도였다. 이 잡지는 오부치 경제산업상의 정치자금 보고서를 입수해 ‘오부치 후원회’가 2010~2011년 후원자들이 참석한 ‘공연 관람회’의 비용 일부인 약 2600만엔(약 2억6000만원)을 부담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오부치의 후원회가 참가자들에게 공짜 혹은 할인된 가격으로 연극을 보여준 셈이다. 오부치 경제산업상은 국회에서 이 문제를 추궁받은 뒤 “차액을 보전한 것이라면 법률을 위반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별도로 마쓰시마 법무상은 지난 7일부터 선거구에 자신의 얼굴과 이름이 새겨진 ‘부채’를 대량으로 나눠준 점이 지적돼 야당의 공격을 받았다. 마쓰시마 법무상은 시나 다케시 민주당 부간사장이 17일 그를 공직선거법 위반(기부행위 등) 혐의로 고발하자 법무상이 형사재판을 받게 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사임 결심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사퇴한 두 여성 각료는 아베 내각의 각료 중 일본 극우단체인 일본의회에 가입하지 않은 3명 중 2명이다. 나머지 3명의 여성 각료는 18일 나란히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아베 2차 내각 가운데 극우가 아닌 2명의 여성 각료가 정치자금 문제로 낙마한 셈이다.
일본 언론들은 이들의 낙마가 정국 전체에 끼칠 영향을 예측하느라 분주하다. 2006년 9월 발족한 아베 1차 내각도 각료 5명이 정치자금 등의 문제로 낙마한 뒤 1년 만에 공중분해됐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이날 총리관저에서 “임명 책임은 총리인 나에게 있다. 국민들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두 각료의 사표를 수리한 뒤 미야자와 요이치(64) 참의원 의원을 신임 경산상으로, 가미카와 요코(61) 중의원 의원을 신임 법무상으로 내정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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