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일본 오키나와현 기노완시 소재 주일미군 후텐마 비행장에 수직이착륙기 오스프리(MV-22)가 늘어서 있다. 미국과 일본은 후텐마 비행장을 오키나와현 내 헤노코 연안으로 이전해 새로운 미군기지를 건설하기로 하고, 주민들의 반대를 무시한 채 공사를 강행하려 하고 있다. 오키나와/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오키나와 지사 선거현장을 가다] 미군기지 반대투쟁 새 국면
“요시, 다케시!”(좋아, 다케시)
16일 저녁 8시. 일본 오키나와 중심도시 나하를 관통하는 하천인 쓰보가와 옆에 자리한 오나가 다케시(67) 오키나와현 지사 후보의 선거 본부는 금방이라도 떠나갈 듯한 함성으로 가득 찼다. 투표가 종료된 뒤 일본의 방송들이 출구조사로 오나가 후보의 승리를 선언했다.
감격한 얼굴의 오나가 후보가 자리에서 일어나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하자 데루야 간토쿠 의원(사민당) 등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눈물을 흘렸다. 지역 언론인 <오키나와타임스>와 <류큐신보>는 호외를 찍어 나하 시내에 돌렸다.
오키나와인들에게 이날 선거는 단순한 한차례 지사 선거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오키나와의 진보와 보수가 ‘미군기지 반대’라는 하나의 이슈에 총결집해 ‘올 오키나와’(하나의 오키나와)라는 깃발 아래서 싸운 첫 승부였기 때문이다. 선거의 핵심 쟁점은 주일미군의 ‘후텐마 비행장’을 같은 오키나와현 안에 있는 나고시 헤노코 해안으로 이전하는 문제였다.
이번 선거에서 오나가 후보와 대결을 벌인 나카이마 히로카즈(75) 현 지사는 지난해 12월 오키나와인들의 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헤노코 이전을 전제로 한 일본 정부의 헤노코 해안 매립 계획을 승인했다. 나카이마 현 지사가 오나가 후보를 꺾고 3선에 성공한다면 70% 넘는 오키나와 현민들이 반대하는 후텐마 비행장의 헤노코 이전은 더 이상 막을 수 없게 된다. 그와 함께 지난 18년 동안 진행된 오키나와의 시민운동도 회복하지 못할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만난 도미야마 마사히로(60) 오키나와민중연대 대표는 “선거에서 이겼으니 오나가 후보를 잘 감시해 가며 헤노코 이전 계획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말했다.
지지자들의 함성 속에서 오나가 후보는 “올 오키나와라는 새로운 정치를 현민들의 뜻을 모아 성공할 수 있었다. 지난해 12월 나카이마 지사가 매립 계획을 승인한 것을 현민들이 용서하지 않은 듯하다”고 말했다.
16일 오키나와 지사 선거는 오키나와현뿐 아니라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질서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주일 미군기지 75% 몰린 오키나와
16일 지사 선거를 치렀다
후텐마기지를 헤노코로 옮기는 걸
막느냐 안 막느냐가 최대 쟁점 ‘기지 이전 반대’ 오나가의 당선
이 결과로 태평양서 진행되는
미군 재편 전략에 차질 불가피
아베 정권도 큰 타격을 받게 됐다
아프가니스탄(2001년)과 이라크(2003년) 등에서 무모한 전쟁을 벌였던 미국 부시 행정부가 해외에 산재한 미군부대를 효율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은 2002년 말부터다. 한국에서는 2004년 한강 이북의 기지를 평택 등에 집중시키는 연합토지관리계획(LPP)과 용산기지 이전, 오키나와에서는 2006년 5월 ‘재편 실시를 위한 미-일 로드맵’(이하 로드맵)으로 구체화된다. 이 계획을 보면 오키나와에 주둔 중인 제3해병원정군(ⅢMEF) 사령부 등 지휘부대 인원을 포함한 해병대 8000명과 그 가족 9000여명을 괌으로 이전하고, 후텐마 비행장 등 주일미군의 5개 기지를 반환하는 내용이다.
미국이 오키나와의 기지 일부를 반환하며 요구한 것은 2014년까지 후텐마를 대체할 비행장으로 헤노코 연안을 매립해 V자 모양에 길이 1800m의 활주로 2개를 갖춘 기지를 제공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계획은 2012년 4월 열린 미-일 안보협력위원회(2+2회의)에서 제3해병원정군 사령부 등을 오키나와에 남기고 괌 이전 병력도 축소(해병대원과 가족을 합쳐 8000명)하는 쪽으로 일부 수정된다.
오키나와인들의 반발은 맹렬했다. 미군기지에 대한 본격적인 반대운동이 촉발된 계기는 1995년 9월에 터진 미군 병사의 소녀 성폭행 사건이었다. 당시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미-일 정부는 ‘오키나와에 대한 미-일 특별행동위원회’(SACO·사코)를 만들어 미 해병대 후텐마 비행장 등 11개 기지를 반환하겠다는 최종 보고서를 내놓는다. 후텐마 비행장은 주민 9만명이 사는 도시 한복판에 있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비행장이라는 악명이 높다.
그로부터 10년 만에 나온 최종 결론은 후텐마 비행장을 외국이나 일본 내 다른 지역이 아닌 오키나와 북동부의 헤노코 해안을 매립해 망가뜨린 뒤 옮기겠다는 계획이었다. 오키나와의 평화운동가 마키시 요시카즈(71)는 “미국은 1960년대부터 자신들이 계획해 뒀던 헤노코 이전 계획을 오키나와인들을 위한 것으로 포장했다. 그것도 일본의 세금을 들여 공짜로 손에 넣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을 위해 용산 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한다고 하면서, 미국 예산으로 이전해야 하는 연합토지관리계획상의 부대 이전 비용까지 ‘방위비 분담금’을 활용해 한국에 떠넘기는 미국의 모습이 겹친다.
16일 오키나와 지사 선거 결과는 후텐마 비행장의 헤노코 이전 계획을 상당 기간 늦추는 브레이크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승리한 오나가 후보가 선거운동 기간에 “당선되면 지사의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기지 건설을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는 나카이마 지사가 승인한 헤노코 매립안에 대해서도 “취소도 시야에 넣고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헤노코 이전안이 상당 기간 공전하면 한국을 포함한 태평양지역에서 진행돼온 미군 재편 전략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애초 2008년에서 2020년께로 끝 모르고 연기되고 있는 주한미군 이전 계획과 사실상 미군과 공동 활용하는 군항이 될 제주도 강정 해군기지 등의 사업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선 이번 선거 결과로 ‘안보 위협론’이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 수 있다. 미-일은 중국의 해양 진출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자, 2006년에 괌으로 이전하기로 했던 미군 제3해병원정군 사령부를 다시 오키나와에 남기기로 했고, 2013년 10월 미-일 안보협력위원회에선 P-8 대잠 초계기,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 5세대 스텔스 전투기 F-35B(2017년) 등을 일본에 전진배치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아베 정권은 이번 선거 결과로 미-일 동맹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피하기 위해 집단적 자위권 등 안보정책에 더 박차를 가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반대로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이전이 정말 필요한지에 대한 논란을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아사히신문>은 8일 “미국은 현재 오키나와, 필리핀, 오스트레일리아, 한국 등으로 순환하며 해병대를 배치하는 ‘면의 억지’ 구상을 현실화시키고 있다. 특히 (후텐마 비행장에 배치된 미 해병대 수송기) 오스프리(MV-22)는 비행거리나 속도 등이 점점 향상되고 있어 꼭 오키나와에 배치하지 않더라도 대응이 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고 보도했다.
나하·헤노코(오키나와)/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오나가 다케시(가운데) 후보가 16일 치러진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에서 승리한 뒤 나하시의 선거본부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만세를 부르고 있다. 나하/AFP 연합뉴스
16일 지사 선거를 치렀다
후텐마기지를 헤노코로 옮기는 걸
막느냐 안 막느냐가 최대 쟁점 ‘기지 이전 반대’ 오나가의 당선
이 결과로 태평양서 진행되는
미군 재편 전략에 차질 불가피
아베 정권도 큰 타격을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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