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키나와섬 북동쪽에 자리한 헤노코 해안에서 진행 중인 주민들의 텐트 농성이 15일 현재 3863일째를 맞았다. 3·11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겪었던 일본 도호쿠 지방 시민들이 응원 차 이곳을 찾아와 오키나와 미군기지 실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헤노코(오키나와)/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후텐마기지 이전 반대 현장
“바다 지질 조사하는 함정과
어민들 매일 해상에서 충돌”
노인들 캠프 정문앞 도로에서
“오우라를 지키자” 춤추며 구호
“바다 지질 조사하는 함정과
어민들 매일 해상에서 충돌”
노인들 캠프 정문앞 도로에서
“오우라를 지키자” 춤추며 구호
“저만치 주먹만 한 바위가 보이죠. 저기가 브이(V)자 모양의 활주로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15일 일본 오키나와의 중심 도시 나하에서 56번 국도를 타고 북상한 자동차는 1시간 반 정도를 달려 섬의 북동쪽 해안인 나고시 헤노코에 닿았다. 11월 오키나와의 태양은 여전히 뜨겁고 눈앞의 바다는 한가롭게 물결치며 부드러운 푸른 빛을 내뿜고 있었다.
헤노코 해안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구조물은 조용한 시골 어촌의 풍경을 침범하고 있는 미군 철조망이었다. 철조망 건너편은 미 해병대 기지 ‘캠프 슈워브’, 그로부터 200m쯤 떨어진 곳에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운동의 중심인 ‘오키나와 텐트’가 자리하고 있다. 텐트 앞에는 주일미군 후텐마 비행장의 헤노코 이전을 저지하려는 텐트 농성을 15일 현재 3863일 동안 계속해 왔음을 보여주는 표지판이 서 있다.
농성장에서 만난 아시도미 히로시(68) 헤노코 텐트촌 촌장은 눈앞에 펼쳐진 풍경들을 하나씩 설명했다.
“저쪽 바다 위에 솟은 바위에서 저 멀리 오렌지색 2층 건물 쪽으로 길이 1800m의 활주로가 만들어집니다. 바다 쪽으로 드문드문 떠 있는 배는 접근금지 구역임을 표시하는 (일본) 해상보안청 함정이죠. 이곳에서 매일 어민들과 해상보안청과의 충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지난 봄부터 해안 매립을 위한 바다 속 지질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주민들의 저항과 거센 태풍의 영향 탓에 일정이 늦춰지는 중이다. 오키나와를 강타한 연이은 태풍으로 정부가 바다 위 경계를 표시하려고 띄운 주황색 부표들이 끊어져 어지럽게 엉킨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헤노코를 둘러싼 주민들의 투쟁이 시작된 것은 1997년 말~1998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6년 12월 미·일 정부는 오키나와 미군기지에 대한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오키나와에 대한 미-일 특별행동위원회’(SACO·사코)를 만들어 미 해병대 후텐마 비행장 등 11개 기지를 반환하겠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가 나온 뒤 미·일 정부가 비행장을 국외가 아닌 오키나와현 안의 헤노코 해안으로 이전한다는 계획이 알려진다. 기지 반대 운동에 참가해 온 히가시온나 다쿠마(52) 나고시 의원은 “기지 이전을 저지하기 위해 나고 시민들은 시 차원의 주민투표를 진행하는 동시에 공사를 막기 위한 연좌 농성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법적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1997년 12월 주민투표에서 주민들은 정부의 경제 지원책 등을 거부하고 ‘기지이전 반대’(52.8%)를 선택했다. 찬성파 시장은 결국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주민들의 연좌 투쟁은 지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헤노코의 노인들은 40℃가 넘는 오키나와의 폭염 속에서도 농성을 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도미야마 마사히로(60) 오키나와민중연대 대표는 피로 골절로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됐고, 경찰과의 몸싸움 끝에 연행된 시민들의 수는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다. 텐트에선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계획에 반대하는 ‘지킴이’ 강동석(26)씨도 만날 수 있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헤노코 기지 조성계획을 보면, 미·일 정부는 브이자 모양의 길이 1800m 활주로 2개 외에도, 수심이 깊은 오우라만 쪽에 길이 271.8m의 접안 시설도 만들 계획이다. 이 규모라면 미군의 대형 상륙함이 접안할 수 있다. 미국은 후텐마 비행장에 배치돼 있는 미 해병대의 신형 수송기인 오스프리(MV-22)를 이곳에 옮긴 뒤 항구 시설을 활용해 육·해·공 합동작전을 준비할 수 있는 복합기지로 사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오후 3시 캠프 슈워브의 정문 쪽에 자리한 또다른 텐트에서 주민들의 항의 시위가 시작됐다. “미군기지 반대” “오우라를 지키자” “산호를 지키자” “듀공을 지키자’. 오키나와 할머니들이 캠프 정문 앞을 지나는 392번 도로에 늘어서 춤을 추며 구호를 외쳤다. 지나가던 자동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시위대에 손을 흔들었다. 이런 오키나와의 민심은 16일 치러진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에서 ‘미군기지 반대’를 내건 오나가 다케시(67) 후보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헤노코(오키나와)/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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