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일본 도쿄 자민당 당사에 걸린 아베 신조 총리의 얼굴을 담은 자민당 선거 포스터 앞을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14일 치러지는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자민당의 압승이 예상된다. 도쿄/AFP 연합뉴스
일본 중의원 선거 D-6…민심은
“관심이 없어. 내 눈엔 다들 똑같이 보이니까.”
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 사는 주부 후지모리 기쿠코(가명·38)에게 14일 치러지는 일본 중의원 선거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관심이 없다”는 한마디였다. 조금 뜸을 들인 뒤 그는 현재 일본 정치 상황에 대한 긴 넋두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아베 정권이 지난 2년 동안 추진해 온 집단적 자위권 행사나 원전 재가동 정책 등에 반대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야당 가운데 지지할 만한 정당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는 “현재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정책을 지지하지 않고, 자민당도 좋아하진 않지만 유신당(일본의 제2야당)도 생활당(오자와 이치로 전 민주당 간사장이 소비세 증세에 반대하며 창당한 당)도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공무원의 아내인 그는 지난 4월 단행된 소비세 증세(5%→8%) 여파에 대해 “어느 정도 부담은 느끼지만 큰 타격은 없다. 아베노믹스로 인해 주가가 많이 올랐으니 경제가 조금 좋아진 게 아니냐”고 말했다.
집단적 자위권·원전 재가동 등 아베 2년 정책 반대 불구
지지율 34%로 민주당의 3배…자민당 아성 여전히 공고
연립여당 과반 획득 유력…‘헌법개정 의석 확보’ 점치기도 14일 치러지는 일본 중의원 선거를 바라보는 후지모리의 냉소는 일본 유권자들이 갖고 있는 평균적인 시선이기도 하다. 아베 신조 정권은 2012년 12월 집권 이후 2년 동안 ‘아베노믹스’라 불리는 경제정책, 집단적 자위권 등으로 대표되는 외교·안보 정책, 원전 재가동을 비롯한 에너지 정책 등을 추진해왔다. 이에 대한 일본인들의 평가는 높지 않다. <아사히신문>이 1일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아베 정권의 경제 정책이 ‘성공했다’는 응답은 37%에 그쳤고,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서는 ‘평가하지 않는다’(반대를 뜻함)는 의견이 50%, 원전 재가동에 대해서도 ‘반대’가 56%나 됐다. 경제 주간지인 <동양경제>의 후쿠다 게이스케 부편집장은 “아베노믹스로 인해 주가는 올랐지만, 임금은 오르지 않고, 한국과 중국 등 외국과의 사이도 나빠졌다. 경제와 외교의 혼란으로 아베 정권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것은 분명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아베 정권 집권 2년 동안 닛케이 평균지수는 2012년 12월의 1만엔 수준에서 올 12월 현재 1만7920엔대로 약 80%나 올랐다. 그러나 주가 상승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일부 계층에 한정돼 있다.
이에 견줘 급격한 엔화 약세로 인해 물가가 오르면서 실질임금은 지난해 7월부터 올 10월 현재까지 16개월째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으로 한국·중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가 악화됐고, 각의 결정을 통해 40여년 유지되어온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헌법 해석을 바꾸면서 일본의 입헌주의가 위기에 빠졌다는 혹독한 비판이 이어졌다. 도쿄에 사는 하야시바라 게이고(39)는 “정치의 역할은 재분배에 있기 때문에 주가를 올려서 투자가들이나 잘살게 만들어선 안 된다. 이번 선거를 통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 특별비밀보호법 제정 등 그동안의 아베 정권의 정치 수법에 대한 심판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민당의 아성은 여전히 견고하다. <아사히신문> 조사를 보면, 자민당의 지지율은 34%로 제1야당인 민주당(13%)보다 세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아베 정권의 구체적인 정책은 반대하면서도 지지율은 높은 기형적인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은 일본 야당들이 믿을 만한 대안 세력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 중의원의 과반수(238명)에도 못 미치는 198명을 후보로 내세우는 데 그쳤다. 이번 선거가 정권을 선택하는 선거가 아니라 아베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 정도로 의미가 축소되고 만 것이다. 그로 인해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의 2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선거가 2주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이번 선거에 큰 관심이 있다’고 답하는 이들은 전체의 23%에 머물렀다. 이에 견줘 민주당이 역사적인 정권교체를 이룬 2009년 8월 선거에선 이 비율이 50%, 자민당의 극적인 복귀를 가져온 2012년 11월 선거에선 42%였다. 아소 다로 부총리의 판세 분석대로 현재 “어느 당에서도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선거 열풍이 없다는 뜻)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아베 정권의 향후 정국 운영 방향이 이번 승부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선거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3일치에서 이번 선거 결과와 그에 따른 영향을 세가지 시나리오로 나눠 분석했다. 먼저, 자민당-공명당 연립여당이 현재(326석)처럼 중의원의 3분의 2 이상(317석)의 의석을 확보하는 경우다. 이 경우 아베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을 둘러싼 안보 관련 법제 개정, 법인세 감세 등의 조처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게 된다. 위안부 문제 등 한-일 간 역사 현안에 대해서도 지금처럼 강경한 입장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요미우리신문>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면 헌법 개정 실현도 시야에 넣을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두번째는 연립여당이 ‘절대안정다수’ 의석(266석)을 확보하는 경우다. 절대안정다수 의석이란 중의원의 17개 모든 상임위원회에서 연립여당이 위원장과 과반수를 모두 차지할 수 있는 의석수를 뜻한다. 현재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이자 모테기 도시미쓰 선거대책위원장 등 자민당이 공식적으로 내걸고 있는 목표(270석)이기도 하다. 이 경우 관심은 연립여당이 270석에서 몇석이나 더 차지할 수 있을지에 모아진다.
세번째로 연립여당이 80석 가까이 의석을 상실해 가까스로 과반수(238석)를 유지하는 경우다. 이 경우 선거 직후부터 자민당 내에서 본격적인 ‘아베 총리 끌어내리기’가 시작될 수 있다. 아베 총리가 당분간 정권을 유지할 순 있겠지만, 내년 가을께 치러지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연임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선거 결과에 따라 가장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 정책은 일본인 과반수 이상이 반대하고 있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둘러싼 안보 정책이다. 자민당은 지난 7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도록 헌법 해석을 변경한 뒤 자위대법, 주변사태법, 무력공격사태대처법 등 구체적인 안보 관련 법률의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자민당은 애초 이 법률을 올해 안에 개정하려 했지만, 내년 4월에 치러지는 통일지방선거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논의를 그 이후로 봉인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연립여당의 의석이 크게 줄어든다면 아베 총리가 주도하는 법률 개정 작업은 난항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일 간의 핵심 현안인 위안부 등 역사 문제에 대해선 선거 결과와 별 상관 없이 일본에서 별다른 성의를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도쿄에 사는 직장인인 오쿠무라 유리카(38)는 “이번 선거에서 다시 자민당이 이기면 아베 총리는 지금까지 추진해온 정책들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선 분명히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선거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변화의 조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지지율 34%로 민주당의 3배…자민당 아성 여전히 공고
연립여당 과반 획득 유력…‘헌법개정 의석 확보’ 점치기도 14일 치러지는 일본 중의원 선거를 바라보는 후지모리의 냉소는 일본 유권자들이 갖고 있는 평균적인 시선이기도 하다. 아베 신조 정권은 2012년 12월 집권 이후 2년 동안 ‘아베노믹스’라 불리는 경제정책, 집단적 자위권 등으로 대표되는 외교·안보 정책, 원전 재가동을 비롯한 에너지 정책 등을 추진해왔다. 이에 대한 일본인들의 평가는 높지 않다. <아사히신문>이 1일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아베 정권의 경제 정책이 ‘성공했다’는 응답은 37%에 그쳤고,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서는 ‘평가하지 않는다’(반대를 뜻함)는 의견이 50%, 원전 재가동에 대해서도 ‘반대’가 56%나 됐다. 경제 주간지인 <동양경제>의 후쿠다 게이스케 부편집장은 “아베노믹스로 인해 주가는 올랐지만, 임금은 오르지 않고, 한국과 중국 등 외국과의 사이도 나빠졌다. 경제와 외교의 혼란으로 아베 정권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것은 분명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아베 정권 집권 2년 동안 닛케이 평균지수는 2012년 12월의 1만엔 수준에서 올 12월 현재 1만7920엔대로 약 80%나 올랐다. 그러나 주가 상승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일부 계층에 한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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