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일본 삿포로시 호쿠세이대학 구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다무라 신이치 학장(왼쪽)과 오야마 쓰나오 이사장이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처음 보도한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를 내년도 비상근강사로 재고용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사진 길윤형 특파원
위안부 증언 첫 보도한 기자를
강사 고용한 대학에 “폭파” 위협
시민사회 지원운동에 힘입어
대학 “내년에도 재고용” 결정
강사 고용한 대학에 “폭파” 위협
시민사회 지원운동에 힘입어
대학 “내년에도 재고용” 결정
“이 결정은 변함이 없겠죠?”(우에무라 기자)
“그렇습니다.”(다무라 학장)
16일 밤 10시.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시의 한 사무실에서 초조함을 억누르며 기다리던 우에무라 다카시(56)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가 비상근강사(시간강사)로 근무하고 있는 호쿠세이대학 다무라 신이치 학장(총장)의 전화였다. 이날 오후 3시께부터 밤늦게까지 학내 최고 결정기구인 평의회 회의를 연 다무라 학장은 우에무라 기자에게 “내년도 계약을 갱신하겠다”는 결정을 전했다.
일본에서도 변방인 홋카이도의 한 대학 시간강사 재계약 문제가 왜 일본열도 전체의 이목을 집중시킨 쟁점이 됐을까. 이번 사태의 주인공인 우에무라 기자는 <아사히신문> 오사카 본사 사회부에서 근무하던 1991년 8월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밝힌 김학순 할머니(1924~1997)의 역사적 증언을 최초로 보도했다. 일본 우익들은 위안부 동원 과정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1993년) 등을 사실상 부정하려는 아베 정권의 역사 수정주의를 등에 업고 지난 1년 동안 우에무라 기자에게 입에 담기도 힘들 만큼 잔인한 공격을 이어왔다. 이 때문에 우에무라 기자는 지난 3월 애초 취직이 결정됐던 고베의 한 여자 대학에서 고용 계약이 취소됐다. 우익들은 우에무라의 장녀의 실명과 사진을 온라인에 공개하고 자살을 유도하는 위협적인 말들을 퍼부었다. 호쿠세이대학도 우에무라 기자를 고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학교를 폭파하겠다’는 협박을 받아왔다.
일본 시민사회는 호쿠세이대학마저 우에무라 기자가 강단에 설 기회를 빼앗는다면 우익들의 폭력에 밀려 학문과 언론의 자유가 크게 위축될 것이라 우려해왔다. 이런 위기 의식 속에서 일본의 학자·법률가·언론인 등 400여명은 지난 10월6일 ‘지지 마라 호쿠세이의 모임’ 등을 만들어 우에무라 기자와 대학을 응원하는 활동을 벌여왔다.
17일 기자회견에서 다무라 학장은 “대학 안팎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폭력과 협박을 용납하지 않는 인식이 넓게 퍼졌고, 그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어 비열한 행위를 막는 억지력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개 대학이 앞서 나가 (우익들의 공격에 맞서) 싸우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혼자 싸우고 있는 게 아니라고 여러분들이 주목하고 지탱해 준 것이 이런 결정을 내리는 데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우에무라와 호쿠세이대학에 대한 위협이 알려진 뒤 일본 전국에서 이 학교를 지원하는 모임이 결성되고, 변호사 380명이 모여 협박장을 보낸 이를 형사 고발하는 등 호쿠세이대학을 지키려는 운동이 활발히 진행돼 있다. 이번 결정이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 사회의 흐름 속에서 작은 등불처럼 보이는 이유다.
삿포로/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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