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공산당은 어떻게 희망을 만들었나
“일본공산당에도 기본 사상이 있지요. 그렇지만 사상에 민의가 반영되지 않는다면 성숙한 사회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일본 도쿄 주오구에 사는 주부 야마다 치히로(54)는 일본공산당원이다. 언제 입당했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평소 자민당의 금권정치나 쓸데없는 공공사업에 세금을 낭비하는 일에 불만은 많았지만, 정치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 평범한 주부였다”고 말했다.
중의원 8석→21석 대도약 이뤄
당원 31만명·지방의원 2700명 탄탄 소련 공산당·북한 정권과 선 긋고
평화 중시 풀뿌리정당 거듭나 정치 관심 없던 54살 도쿄 주부
의료체제 붕괴 보고 세상 눈뜬 뒤
시민운동 대신 정당 가입 선택 야마다가 일본공산당에 입당한 것은 2006년이었다. 그 무렵 자민당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이 추진한 의료개혁이 계기였다. 고이즈미 정권은 집권 이후 꾸준히 의료 분야에 시장원리를 도입하고, 국가의 재정 부담을 이유로 환자와 고령자의 자기부담을 늘리는 방향의 의료개혁을 강행했다. 국가가 병원에 지급하는 진료보수가 줄고, 노인들이 내야 하는 자기부담금이 많아지자 입원해 있던 노인들이 대거 병원 밖으로 내몰리게 된다. 그의 부친도 이 과정에서 “정말 큰 곤란”을 겪어야 했다. 그는 “일본의 의료 붕괴가 시작된 것은 그때부터다. 그 일을 계기로 정치와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에게 일본공산당 입당을 권한 것은 대학 1학년 때 공산당에 가입해 있던 남편이었다. 그는 “남편이 권한다고 무조건 입당한 게 아니라 (공산당 기관지인) <아카하타>(적기) 등을 읽으며 여러 가지를 고민한 끝에 입당을 결심했다”고 회상했다. 개인이 세상을 바꾸려면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일본은 정당정치를 하는 사회니까 정당을 직접 응원하는 게 가장 빠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며 야마다의 관심은 젊은이들이 직면한 비정규직 문제, 빈곤 문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엔 원전 문제 등으로 확장되었다.
일본에선 지난달 14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기존 8석의 의석을 21석으로 늘린 일본공산당의 약진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공산당이 집단적 자위권 등 아베 신조 정권이 추진하는 여러 정책에 대해 원칙적 입장에서 끈질기게 반대한 유일한 정당이었고, 시민들이 관심을 갖는 풀뿌리 영역의 생활 정치 분야에서 오랫동안 꾸준히 노력해 온 점이 유권자들의 평가를 받았다는 의견을 전문가들은 내놓고 있다. 이런 분석은 2004년 한국의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10석을 확보하며 약진했을 때 국내에서 이뤄진 논의와 비슷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1922년 창당해 93년 역사를 지켜온 일본공산당은 여러 부침 속에서도 소련 공산당이나 북한 정권과 선을 긋고 ‘평화와 자주독립을 중시하는 풀뿌리 정당’으로 거듭났지만, 한국 진보정당은 아직까지 시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공산당을 뒷받침하는 것은 31만 당원과 2700명의 지방의원을 갖춘 단단한 풀뿌리 조직이다. 기자가 거주하는 도쿄 주오구는 30명 정원의 구의원 가운데 4명이 일본공산당 의원이다. 그 중 한 명인 오구리 치에코(59) 구의원은 1991년부터 이 지역에서 6선을 한 주오구의 터줏대감이다. 지난 27일 주오구 닌교초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방문해 보니 각종 선거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고, 매달 당원들에게 보내는 의원 활동보고서 등을 정리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그의 이름을 따 매달 발행하고 있는 ‘마론(오구리는 ‘작은 밤’이라는 뜻인데, 일본에선 프랑스어 발음을 따 밤을 마론이라 부른다) 리포트’는 벌써 372호를 발행하고 있었다.
그의 또 다른 중요 업무는 동료 공산당 의원들과 함께 구민들을 상대로 정기적인 여론조사를 해 그 결과를 구정에 반영하는 것이다. 진행중인 설문조사 문항을 보니, 헌법 개정, 원전, 소비세 등 정치 현안도 있지만, 지역 현안인 쓰키치 시장(주오구에 있는 일본의 유명한 어시장) 이전 문제, 매년 3억엔이 드는 도쿄만 불꽃놀이 축제, 지역 재개발 문제 등 생활 이슈와 관련된 질문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오구리 의원은 “의료보험료 인상 등 중요 현안에 제대로 반론을 펼치는 곳은 공산당뿐이다. 일본공산당 의원이 있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의 차이는 정말 크다”고 말했다.
당원인 주부 야마다가 일본공산당에 기대하는 것은 민의를 반영하는 정치를 실현해 주는 것이다. 그는 “일본공산당에는 마르크스주의라는 기본 사상이 있지만 민의가 반영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국민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들을 찾아 일본공산당이 최선을 다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유권자들에게 ‘공산당의 의석이 늘어나니 일본 정치가 실제로 변한다’는 느낌을 주길 바란다”고 했다. 오구리 의원은 “일본공산당의 중의원 의석이 20석을 넘었으니 의안제안권을 가지게 됐다”며 “일본공산당이 제안하는 법안이 당장 실현되긴 힘들더라도, 다른 정당들과 정부가 이에 자극을 받아 일본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바꿔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당원 31만명·지방의원 2700명 탄탄 소련 공산당·북한 정권과 선 긋고
평화 중시 풀뿌리정당 거듭나 정치 관심 없던 54살 도쿄 주부
의료체제 붕괴 보고 세상 눈뜬 뒤
시민운동 대신 정당 가입 선택 야마다가 일본공산당에 입당한 것은 2006년이었다. 그 무렵 자민당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이 추진한 의료개혁이 계기였다. 고이즈미 정권은 집권 이후 꾸준히 의료 분야에 시장원리를 도입하고, 국가의 재정 부담을 이유로 환자와 고령자의 자기부담을 늘리는 방향의 의료개혁을 강행했다. 국가가 병원에 지급하는 진료보수가 줄고, 노인들이 내야 하는 자기부담금이 많아지자 입원해 있던 노인들이 대거 병원 밖으로 내몰리게 된다. 그의 부친도 이 과정에서 “정말 큰 곤란”을 겪어야 했다. 그는 “일본의 의료 붕괴가 시작된 것은 그때부터다. 그 일을 계기로 정치와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에게 일본공산당 입당을 권한 것은 대학 1학년 때 공산당에 가입해 있던 남편이었다. 그는 “남편이 권한다고 무조건 입당한 게 아니라 (공산당 기관지인) <아카하타>(적기) 등을 읽으며 여러 가지를 고민한 끝에 입당을 결심했다”고 회상했다. 개인이 세상을 바꾸려면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일본은 정당정치를 하는 사회니까 정당을 직접 응원하는 게 가장 빠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며 야마다의 관심은 젊은이들이 직면한 비정규직 문제, 빈곤 문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엔 원전 문제 등으로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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