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일본 도쿄의 한 전시회장에서 열린 ‘표현의 부자유’전에 참가한 조각가 김운성, 김서경 부부가 위안부 소녀상 옆에 있다. 김씨 부부가 만든 이 조각상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1000번째 수요집회가 열린 2011년 12월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것과 동일한 모양의 조각이다.
일본 사회에서 ‘금기’로 여겨지는 천황제나 위안부·헌법 9조 등 정치적 문제를 정면에서 다뤘다는 이유로 전시회장에서 쫓겨났던 작품들을 모은 ‘표현의 부자유전’이 도쿄 네리마구의 한 전시회장에서 18일 시작됐다.
전시물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끊임없이 철거를 요구하고 있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평화의 소녀상’과 동일한 작품이다. 이 소녀상을 만든 조각가 김운성(50), 김서경(49) 부부는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과 똑같은 모양의 소녀상을 가지고 이날 개막 행사에 참가했다.
그 때문인지 이날 행사장엔 일본 우익들의 공격을 우려하는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행사를 준비한 실행위원들은 소녀상이 일반 관람객을 가장한 우익들의 공격에 훼손될 가능성을 우려해 관람객들이 직접 소녀상 옆에 앉아보는 체험행사를 진행할지를 두고 치열한 논의를 벌였다. 결국 작가인 김씨 부부의 의견을 받아들여 예정대로 자유로운 관람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 소녀상의 축소 모형은 2012년 8월 도쿄도미술관에서 열린 ‘제18회 잘라(JAALA) 국제교류전’에 출품됐었지만, 미술관이 “(정치적 표현물이기 때문에 미술관의) 운영요강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행사장에서 치운 적이 있다. 한국미술 연구자인 후루카와 미카는 이번 전시회의 안내집에서 “주최자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어느 새 전시회장에서 사라진 소녀상은 일본의 역사인식과 표현을 둘러싼 ‘부자유한 상황’을 폭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시장엔 2012년 6월 석연치 않은 이유로 일본에서 전시하려던 중국인 위안부 할머니 사진전이 취소됐던 사진작가 안세홍(42)씨의 새로운 작품도 출품됐다. 안씨는 지난해 4개월에 걸쳐 한국, 중국, 동티모르, 필리핀 등 5개국을 돌며 만난 60여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일상을 채록한 작품을 완성한 바 있다. 그는 “올 8월에 한국 전시는 결정됐지만, 위안부 관련 작품이라 그런지 일본에선 좀처럼 전시장을 잡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시회는 천황이나 위안부, 개헌, 원전 등 껄끄러운 문제를 다뤘다는 이유로 전시회장에서 쫓겨난 경험을 공유한 일본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2월1일까지 진행된다.
도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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