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취재 예정 기자 여권 압수
외무성, ‘안전상 이유’ 첫 출국금지
“헌법상 이동 자유 훼손” 비판 일어
언론인 겐지 피살 이후 관심 고조
외무성, ‘안전상 이유’ 첫 출국금지
“헌법상 이동 자유 훼손” 비판 일어
언론인 겐지 피살 이후 관심 고조
언론의 자유가 먼저일까, 국민 안전이 우선일까.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의해 희생된 일본의 독립 언론인 고토 겐지가 던진 ‘화두’를 둘러싸고 일본 정부와 시민 사회가 논쟁을 벌이고 있다.
논쟁의 직접적인 계기는 일본 외무성이 지난 7일 밤 니가타현에 거주하는 독립 언론인 스기모토 유이치(58)의 여권을 ‘안전상의 이유’로 압수하면서부터다. 스기모토는 10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5일께 일본 외무성 해외일본인안전과 직원으로부터 이달 말로 예정된 시리아 방문 계획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 받았지만 응하지 않자 “직원들이 직접 아파트를 찾아와 여권을 반납해 줄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활동을 지원해 준 이들에게 피해가 갈 것을 우려해 여권을 일단 반납했지만, 외무성의 이번 조처에 불복하는 행정소송을 낼 것을 검토하고 있다. 그는 “(일의 특성상) 여권이 없는 것은 실업상태와 같다”고 분노를 터뜨리고 있는 중이다.
일본 정부가 여권을 압수하며 제시한 법적 근거는 여권법 19조의 “여권 소지인의 생명 보호” 조항이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 정부가 이 규정을 적용해 자국인의 해외 출국을 사실상 금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9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조처를 취한 이유에 대해 “이슬람국가가 일본인을 살해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시리아에 입국하면) 생명에 즉각 위험이 닥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들은 정부의 이번 조처에 대해 우려스럽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헌법이 보장하는 이동의 자유와 연관되는 문제로 (똑같이 이슬람국가에 의해 자국민이 희생된) 미국이나 프랑스에선 언론인의 출국 제한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고, <마이니치신문>도 사설을 통해 “이번 사례가 나쁜 선례가 되면 안 된다”는 원칙론을 밝혔다.
일본인 인질 사태 이후 사회 전체에 아베 정권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헌법학자 고바야시 세쓰,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 작가 히라노 게이치 등 일본의 저명 인사들은 9일 참의원 회관에서 ‘좋지 않은 흐름을 끊고, 비판할 것은 쓰자’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비상시엔 정권 비판을 자숙해야 한다는 말을 받아들이면 앞으로 정권 비판을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정권을 보위하는 체제를 구축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고바야시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이번 일로 아베 정권을 비판하면 히스테릭한 반응이 돌아온다. 병적인 일로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10일 인질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적절했는지를 검증하는 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조사 기간은 이번 사건의 첫 희생자인 유카와 하루나가 행방불명된 지난해 8월부터로 정해졌다. 검증 대상에는 이번 인질 살해 사건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아베 총리의 지난 17일 카이로 연설도 포함될 예정이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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