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평화연대 호소
“이 형님들도 이렇게 늙었네. 우리가 처음 만날 땐 40대였는데.”
지난 28일 일본 도쿄 분쿄구의 한 선술집에 자리를 잡은 한충목(58) 한국진보연대 대표는 와타나베 겐주(63) 일한민중연대전국네트워크 공동대표의 얼굴을 보며 정답게 말을 걸었다. 와타나베 대표가 그 말을 받아 “벌써 머리가 이렇게 빠졌다”며 이제는 머리칼이 듬성듬성해진 자신의 정수리를 매만졌고, 옆에 앉은 기타가와 히로카즈(61) 월간 <일한분석> 편집원은 서툰 한국말로 농담을 건넸다.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들이 1996년부터 해마다 어김없이 치러온 3·1절 공동행사가 지난 28일로 20회째를 맞았다. 양국 시민단체의 사귐이 시작된 것은 20년 전이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전 국회의원)은 “당시 (최대 재야단체이던) 전국연합(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현 한국진보연대)의 상임의장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한-일 관계가 나쁠 때일수록 민간에선 더 자주 만나고 교류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본의 민중세력과 함께 심포지엄을 열었다. 그것이 계기가 돼 지금까지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한국에는 재야와 시민단체를 아우르는 전국연합이란 단체가 있었지만 일본엔 그런 단체가 없었다. 한국과의 교류 필요성이 생기자, 1970년대부터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의 구명운동에 참여해온 멤버들을 중심으로 한국의 민주화와 평화통일운동을 지원하는 ‘일한민중연대전국네트워크’를 1999년 봄 발족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해마다 3·1절엔 한국에서 일본으로 8·15 광복절엔 일본에서 한국으로 답방하는 교류 행사를 벌써 20년째 이어오고 있다. 오랜 세월의 사귐이 쌓인 덕분일까. 이들은 서로를 형님, 동생으로 부르며 이날 행사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지인들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이날 교류 모임에 앞서 이들은 도쿄 분쿄구민회관에서 3·1절 96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다. 이날 행사의 핵심은 해방 70주년(일본에선 패전 70주년)을 맞아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집단적 자위권’ 등 일본을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려는 움직임을 두 나라 시민들이 어떻게 저지할까로 정해졌다. 와타나베 대표는 이날 호소문에서 “3월1일은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한반도 사람들이 독립을 요구하며 떨쳐 일어난 3·1운동의 96주년이다. 일본인에게는 지난 역사를 직시하며 어떻게 한반도와 아시아 사람들과 평화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갈지를 다시 묻는 날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이창복 의장도 이날 연설에서 한-미-일 군사동맹을 제어하기 위한 ‘동아시아 시민평화연대’의 조직을 다시 한번 호소했다. 행사 중간에는 일본인, 재일동포들이 함께 만든 ‘노래의 모임’ 회원들이 ‘바위처럼’ 등 한국 민중가요를 불렀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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