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정부-오키나와 현 정면충돌 양상
‘반대 미군기지’ 첫 카드 실패한
오나가 지사 “민의 따라 대응할 것”
‘반대 미군기지’ 첫 카드 실패한
오나가 지사 “민의 따라 대응할 것”
“심사가 공평공정하게 이뤄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지난 30일 저녁, 현청 간부들과 종일 긴급대책 회의를 마치고 굳은 표정으로 기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오나가 다케시 오키나와현 지사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날 오전 일본 농림수산성은 오나가 지사가 지난 23일 방위성의 오키나와방위국에 ‘7일 이내에 (헤노코 연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해저 지층 조사작업을 중지하라’고 지시한 데 대해 “효력을 무효화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오나가 지사는 “국가가 이의신청을 하고, 같은 국가기관인 농림수산성이 이를 심사했다. (이런 상황에서) 심사가 공정하게 이뤄진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매우 유감이다”라며 일본 정부의 대응을 강하게 비판했다.
오키나와 남동부에 자리한 미 해병대 후텐마 기지를 섬 북동부의 헤노코 해안으로 이전하는 해묵은 문제를 둘러싸고 일본 정부와 오키나와현이 급기야 정면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에서 후텐마 문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지난 15년 동안 진행된 미군 재편 작업에 사실상의 종지부를 찍는 작업이자, 글로벌 동맹으로 위상을 키워가고 있는 미-일 동맹을 상징하는 민감한 안보 현안이다. 미-일 동맹을 강화해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려는 아베 정권으로선 어떤 반대가 있더라도 반드시 관철해야 하는 최우선 국정과제인 셈이다.
현재 계획대로 헤노코 기지가 완성되면 미군은 오키나와에 길이 1800m짜리 활주로 2개와 271.8m의 접안시설을 가진 전천후 해외 기지를 확보하게 된다.
이에 대한 오키나와의 반발은 거의 폭발 직전으로 차오른 상태다. 일본 전체 국토의 0.3%에 불과한 오키나와에 주일 미군기지의 74%가 집중된 현재의 노골적인 차별 구조를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오키나와의 이런 울분이 구체화된 것은 지난해 11월 오키나와 지사 선거였다. 당시 오키나와의 진보와 보수 세력은 ‘미군기지 반대’라는 이슈 아래 단결해 ‘올 오키나와’(하나의 오키나와) 깃발을 내걸고 오나가 지사를 당선시켰다. 오나가 지사는 취임 후 3개월여의 노심초사 끝에 지난 23일 헤노코 기지 건설을 위한 지층 조사작업 중단 지시란 카드를 빼들었다. 그는 당시 “오늘부터 새로운 국면(에 들어간다)”이라는 비장한 결의를 밝히기도 했다고 <아사히신문>이 전했다.
그러나 오나가 지사가 꺼내든 첫 카드는 노련한 일본 정부의 대처에 예봉이 꺾인 상태다. 오키나와방위청이 행정기관의 부당한 행정 처분에 국민들이 불복할 수 있도록 한 ‘행정불복심사법’에 근거해 오나가 지사의 지시를 취소해 달라는 심사청구 등을 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청구의 신청 주체는 국가가 아닌 ‘국민’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대응이 적법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하야시 요시마사 농림수산상은 “(기지) 이설 작업이 중단되면 미일간의 외교· 방위에 큰 손해가 된다”며 정부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일본 언론들은 오나가 지사가 다른 명목으로 공사를 중단시킬 방법을 검토하고 있지만, 이런 대응으로 공사를 무산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앞으로) 법정 투쟁으로 가면 현의 승산은 없다”는 일본 정부 관계자의 말 등을 인용해 6월까지 조사를 끝낸 뒤 여름부터 기지 건설을 위한 매립 공사에 돌입한다는 정부의 입장엔 변화가 없다고 지적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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