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전 70주년 맞아 격전지 방문
‘평화주의 지켜야’ 철학 담겨 해석
‘평화주의 지켜야’ 철학 담겨 해석
9일 오전 남태평양 팔라우 공화국 남단의 작은 섬 펠렐리우. 하얀 국화를 손에 든 일왕 부부가 섬 최남단에 자리한 ‘서태평양전몰자의 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광경을 2차대전 말기 미군과 일본군의 격전지이자,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투로 꼽히는 펠렐리우 전투에서 가족을 잃은 일본인 유족들이 숨죽인 채 바라봤다. 일왕 부부는 위령비 앞에서 90도 가깝게 허리를 숙인 채 긴 묵념을 한 뒤, 발걸음을 돌려 눈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를 향해 다시 허리를 숙였다.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이 광경을 생중계했다.
일왕은 일본 패전 70주년을 맞은 올해 펠렐리우섬을 반드시 방문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그 배경에는 일본이 지난 전쟁의 경험을 다시 한번 되새겨 전후 유지해온 평화헌법을 지켜가야 한다는 일왕의 오랜 철학이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일왕은 올해 초 “이 기회에 만주사변(1931년)에서 시작된 전쟁의 역사를 충분히 배우고 이후 일본의 모습을 생각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을 밝혔다. 2013년 80살 생일 때는 “평화와 민주주의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소중한 것으로 생각해 일본국 헌법을 만들어 여러 개혁을 시행해 오늘에 이르렀다”며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추진 중인 개헌 움직임을 은근히 견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아사히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일왕의 펠렐리우섬 방문에 대해 “그 전쟁이 무엇이었는지, 가까이서 생각하는 기회로 만들자”는 사설을 싣기도 했다. 일왕은 패전 50주년이 되는 1995년엔 히로시마, 오키나와 등을, 60주년인 2005년엔 사이판을 방문한 적이 있다.
펠렐리우 전투는 태평양전쟁이 막판으로 치닫던 1944년 9~11월 필리핀 상륙을 앞둔 미군이 일본군의 대형 비행장이 있던 이 섬을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미군은 이 전투에 제1해병사단의 정예 병력을 투입했고, 이에 맞서 일본도 당시 관동군의 최강으로 불리던 육군 보병 2연대 1만6000명을 투입했다. 석달에 걸친 치열한 전투에서 살아남은 일본 병사는 34명에 불과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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