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재일조선인총연합회(총련) 결성 6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도쿄 기타구 도쿄조선중고급 학교 주변에서 일본 우익단체가 커다란 확성기로 ‘헌법 개정’과 ‘일본은 일왕(천황)을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총련 결성 60주년 기념 행사장 밖 광장에서
‘혐한 집회’ 우익 vs ‘차별 반대’ 시민, ‘격한 설전’
‘혐한 집회’ 우익 vs ‘차별 반대’ 시민, ‘격한 설전’
“일본인을 납치한 조선놈들을 죽여버리자는 게 뭐가 나쁘냐!”
“시끄러워! 너희들 같은 차별주의자는 일본의 수치다.”
31일 오전, 일본 도쿄와 사이타마현을 잇는 JR 사이쿄센 주조역 앞 광장. 이날 주조역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도쿄조선중고급학교에선 총련(재일조선인총연합회) 결성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의 주인공은 창립 60돌을 맞은 총련이었는지 모르지만, 행사장 밖의 주인공은 최근 일본에서 극성을 부리고 있는 ‘혐한 집회’(헤이트 스피치)를 주도하는 일본 우익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반대 행동’에 나선 일본인들이었다.
이날 주조역 앞에서 펼쳐진 광경은 작게는 총련과 그에 가까운 재일동포, 넓게는 한국을 포함한 한반도 출신의 한국·조선인들에 대해 일본 사회가 품고 있는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을 응축해서 보여줬다. 역을 등지고 광장의 오른쪽엔 총련 60주년 기념행사를 방해하기 위해 몰려든 우익단체 회원들이, 그 반대쪽엔 이들의 행동에 맞서 차별을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이 모여들어 서로 격렬한 욕을 주고받고 있었다.
총련의 60주년 행사를 방해하기 위해 모여든 ‘납치 피해자 탈환 국민대행진 실행위원회’ 등 우익단체 회원 30여명은 ‘학살 김 왕조 타도’라는 커다란 펼침막을 꺼내 들고 “납치는 침략이다” “돌려주지 않으면 전쟁이다”라는 구호를 외쳐댔다. 이들의 목소리를 취재하기 위해 다가서자 사복을 입은 일본 공안 담당자로 보이는 인물이 “다가서면 트러블이 발생할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다”고 제지했다. ‘대일본애국당’이라는 다른 우익단체 회원들은 총련 행사장과 가까운 데쿄대학 주변에서 확성기를 단 차량 두 대를 배치해 놓고 한동안 시끄럽게 난동을 피우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는 그들보다 2~3배 더 많이 몰려든 차별 반대 행동 참가 시민의 목소리에 묻혔다. 차별 반대 행동에 참가한 이들은 한때 일본에서 인기를 모은 걸그룹 카라의 ‘프리티걸’과 빅뱅의 ‘목소리를 들려줘요’ 등의 노래를 틀어가며 혐한 집회 참석자들을 조롱했다. 혐한 집회를 하는 쪽에서 한국·조선인들에 대해 몰상식한 비난을 퍼부으면, “닥쳐라, 차별주의자들아”라며 맞대응했다.
이날 차별 반대 행동에 참여한 한 30대 일본 시민은 “사회에 차별주의를 만연시키는 저런 얼간이들이 일본을 망치고 있다. 인종주의적 관점을 갖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납치 문제 해결을 요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총련 60주년 행사는 도쿄 주변 각지에서 모여든 재일동포 수만명이 참석한 가운데 큰 불상사 없이 끝났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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