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한겨레>가 찾은 일본 교토부 북단인 교탄고시 교가미사키에 설치된 미군 엑스밴드 레이더(AN/TPY-2) 기지의 전경. 레이더는 북한 미사일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 해안인 북쪽으로 설치돼 있다. 지난해 12월 레이더가 가동된 뒤 주민들은 저주파 소음과 전자파로 인한 건강 영향을 우려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전자파의 영향은 레이더 후방 지역엔 미치지 않는다”며 맞서고 있다. 실물 레이더는 진한 초록색 건물의 뒤편에 설치돼 있다.
“앞에 녹색 건물 보이시죠? 저 건너편에 레이더가 설치돼 있습니다.”
지난 13일 오전. 미국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핵심인 엑스밴드(X-band) 레이더(AN/TPY-2)가 설치된 일본 교토부 교탄고시의 항공자위대 교가미사키 기지 주변은 오가는 사람 없이 한산했다. 시골 마을의 고요한 분위기와 그 존재만으로도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정세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레이더 기지의 묵직한 존재감이 겹쳐 설명하기 힘든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나가이 도모아키 ‘미군기지 건설을 우려하는 우카와 유지의 모임’(이하 유지의 모임) 사무국장이 기지 주변을 둘러싼 철조망을 따라가며 안쪽의 시설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기지 안 언덕 위 녹색 건물 안에는 레이더의 핵심 장치인 냉각기와 제어기로 보이는 장치들이 설치돼 있고, 그 뒤쪽에선 ‘우~웅’ 하고 기분 나쁜 소리를 내고 있는 발전기가 가동중이다. 저만치 정문 쪽에는 레이더가 확보한 정보를 다른 미사일방어(MD) 시스템과 공유하기 위한, 골프공 모양의 정보 송수신용 안테나도 설치돼 있었다. 나가이 사무국장은 “평소엔 발전기 소음이 커 주민들의 생활 불편이 큰데, 오늘은 점검중인지 그나마 소리가 평소보다 작다”고 말했다. 우리 일행이 사진을 찍어대자, 검은색 소총을 어깨에 멘 경비직원들이 다가와 경계하기 시작했다.
주민 동의 없이 7개월 만에 뚝딱
괌 향한 북한 미사일 탐지용
바다 쪽 레이더 안 보이고 웅 굉음만
동해에 면해 있는 일본의 한적한 시골 마을인 교가미사키가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년 전인 2013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취임 직후였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워싱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항공자위대의 교가미사키 기지에 엑스밴드 레이더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2006년 6월 일본 북부 아오모리현 쓰가루시의 샤리키 육상자위대 기지에 일본 내 최초의 엑스밴드 레이더가 설치된 지 7년 만의 일이었다. 이후 2014년 5월 레이더 설치를 위한 공사가 시작됐고, 10월 교가미사키 기지에 레이더가 반입됐다. 이후 두 달에 걸친 준비를 마치고 지난해 12월 레이더는 본격 가동을 시작했다. 철조망 안쪽에선 미군과 이 레이더의 제조사인 미국 군수업체 레이시온의 직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미군 레이더 기지의 정문엔 출입 금지를 알리는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최근 표지판을 무시하고 기지 안쪽으로 발길을 옮긴 일본 시민들이 현장에서 체포돼 일본 경찰에 신병이 넘겨진 일이 있었다.
지난 13일 미군 레이더 기지 인근의 해수욕장에서 포착한 레이더 기지의 모습. 일본 정부는 레이더 전방 반경 6㎞ 지역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했다. 동아시아 국제 정세에 여러 파장을 몰고 온 레이더의 지정학적 중요성과는 관계없이 기지 주변의 풍경은 평온하기만 했다.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드 논란’과 달리 일본에선 이 레이더 설치를 둘러싼 논란이 별로 없었다. 미국이 이곳에 레이더를 설치한 이유와 목적이 비교적 명료했기 때문이다. 나가이 사무국장은 “육지 쪽에선 잘 보이지 않지만 바닷가 쪽에서 보면 레이더가 북쪽을 향해 설치돼 있다. 그로부터 직선을 그으면 레이더가 북한과 러시아의 연해주 지역을 향하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고 말했다. 일본에 설치된 두 개의 엑스밴드 레이더는 북한이 미국 쪽을 향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쏠 경우 이를 포착·추적하기에 최적의 장소에 위치하고 있다. 북한이 미국의 하와이를 향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한다면 탄두는 미군의 첫번째 엑스밴드 레이더가 설치된, 홋카이도와 혼슈를 가르는 쓰가루해협 상공을 지나게 된다. 북한이 괌을 표적으로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혼슈와 규슈를 가르는 간몬해협 부근을 지나게 돼, 교가미사키에 설치된 두번째 레이더로 충분히 포착할 수 있다. 게다가 교가미사키엔 자위대의 별도 레이더 기지도 있고, 동쪽으로는 2척의 이지스함이 배치되어 있는 일본 해상자위대의 마이즈루 기지도 있다.
일 정부 “건강 피해 없다”면서
30억엔으로 지자체 입막음
3000km 가는 전자파 위력 막강
“갉아먹는 건강…입증 어려워”
3만4000평 터에 넓은 개활지 필요
한국 설치 땐 일본보다 민원 클듯
그러나 미군의 이런 전략적 의도와 상관없는 이 지역 주민들에게 레이더 설치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와 같은 일이었다. 나가이 사무국장은 “주민들의 의견 수렴도 전혀 이뤄지지 않은 채 이곳 사람들은 2013년 2월 신문 기사를 통해 레이더 배치 사실을 갑작스레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레이더 설치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유지의 모임’ 등을 만들어 반대운동을 전개했지만, 끝내 미-일 정부 간 합의 사항을 뒤집진 못했다.
이곳에서 레이더가 가동된 지 6개월 동안 주민들은 크고 작은 피해를 호소해 왔다. 가장 큰 우려는 3000㎞ 이상 거리의 미사일까지 탐지할 수 있는 엑스밴드 레이더가 쏘아대는 강력한 전자파로 인한 건강·환경 피해다. 그밖에도 발전기에서 발생하는 저주파 소음으로 인한 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다. 기지에서 300m 떨어진 오와 마을에서 만난 한 주민은 “기지 주변에 가면 구토와 어지러움을 겪는다고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 밤엔 많은 이들이 발전기 소음 때문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 레이더가 바다 쪽으로 전파를 쏘고 있어 “(레이더 후방에 위치한) 주민들에 대한 건강 피해는 생각할 수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소음에 대해선 발전기에 머플러와 방음벽을 설치하는 등 경감 대책을 시행하고 있어 괜찮다고 주장한다. 나가이 사무국장은 “레이더가 쏘는 강력한 전파 등으로 인한 건강 피해는 방사선처럼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진행되기 때문에 쉽게 눈에 띄지 않고, 건강 피해와의 인과관계 증명도 쉽지 않다. 정부는 앞으로도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소리만 되풀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지자체인 교탄고시에 10년 동안 30억엔에 달하는 미군기지재편교부금을 지급하는 등 돈으로 주민들의 불만을 억누르려 하고 있다.
사드의 핵심인 엑스밴드 레이더를 먼저 설치한 일본에서 현지 주민들이 겪고 있는 이런 문제들은 한국에도 많은 고민거리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바다를 향해 레이더를 설치해 그나마 주민 불편이 조금 덜한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 중국을 직접 자극하지 않고 이 레이더를 설치하려면 바다에 면한 서쪽이 아닌 육지인 북쪽을 겨냥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주변 주민들은 일본에서보다 훨씬 큰 불편과 피해를 겪게 되고, 그로 인해 적잖은 사회적 갈등도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미 육군의 관련 안전 기준을 보면, 엑스밴드 레이더 설치를 위해선 가로 281m, 세로 약 94.5m 크기의 터(축구장 4개 크기)가 필요하고, 그 외곽 11만2396㎡(3만4000평)에 안전 확보를 위한 철조망을 쳐야 한다. 또 레이더 정면으로 좌우 각각 65도, 위로는 90도에 해당하는 반경 5.5㎞에 시야가 탁 트인 개활지가 확보돼야 한다. 일본 방위성이 2013년 4월 내놓은 ‘TPY-2 레이더에 대해’라는 제목의 자료를 보면, 일본은 △레이더와 바다 사이에 중간 차단물이 없고 △비행금지구역을 설치할 수 있으며 △레이더가 쏘는 전자파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전파탑·방송탑 등이 없다는 이유로 이 지역을 후보지로 정했다. 일본 정부는 이 레이더가 설치된 뒤 전방 반경 6㎞ 지역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기도 했다. 한국이 사드를 도입하기로 결정하고 엑스밴드 레이더를 설치하게 되면, 레이더 전방 지역 주민들은 건강과 생활 피해를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또 사드 도입에 필요한 막대한 예산 이외에도 이 정도의 대규모 토지 확보 과정에서 대규모의 비용과 행정력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나가이 사무국장과 함께 철조망을 한 바퀴 돌아 기지 정문에 도착했다. 그 앞엔 “허가 없이 침범하면 처벌받는다”는 경고문이 나붙어 있었다. “저기 지붕이 높은 건물이 본부라고 하는데 우리는 연락처 하나 알지 못합니다. 저들에게 주민의 의사 따윈 중요하지 않죠. 한국에 이 레이더가 설치되면 일본과 똑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요?” 나가이 사무국장이 씁쓸하게 말을 맺었다.
교가미사키(교토)/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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