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담화 조율 ‘21세기 구상 간담회 보고서’ 공개
“한국의 대일정책은 이성과 심정(감정) 사이에서 요동쳐왔다.” “386세대가 노무현 정권 아래서 극히 반일적인 이념을 주장했다.”
아베 정권을 떠받치고 있는 ‘일본 보수’의 한국관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21세기 구상 간담회’(이하 간담회)의 보고서가 6일 공개됐다. 한국 외교가 이성과 감정이 요동치는 대일 외교를 전개해왔으며, 한-일 관계가 악화된 가장 큰 책임이 한국의 386세대에 있다는 것이다.
이날 공개된 A4 38쪽 분량의 보고서는 동아시아 역사 갈등의 본격적인 기폭제가 될 수 있는 ‘아베 담화’의 뼈대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그동안 한·중 양국의 큰 관심을 모아왔다. 한국 관련 내용은 ‘한국과 화해의 70년’이라는 항목에 집중돼 있다.
보고서는 먼저 일본이 한반도에서 행한 35년간의 식민지배에 대해 “1920년에 일정의 ‘완화’(3·1운동 이후의 문화통치)도 있었고, 경제성장도 실현됐지만 1930년대 후반부터 과혹화(過酷化)됐다”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 일본이 시행한 참혹한 강제동원의 역사는 ‘과혹화’라는 한마디로 정리됐고, 황민화 교육, 창씨개명 강요, 조선말 사용 금지 등의 정책에 대해선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보고서가 주목한 것은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갖고 있는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즉, “한국에 일본은 이성적으로는 국제 정치에서 협력해야 할 나라이지만, 심리적으로는 부정하고 극복해야 하는 상대라는 점에서 딜레마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연장선에서 보고서는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과 국교정상화를 단행한 것은 ‘이성적’이었지만, 1987년 한국이 민주화된 뒤엔 대일본관이 ‘심정’(감정)으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35년간 식민지배는 단 한 줄 언급
대신 한국인의 대일 감정에 주목
“한-일관계 노무현 정권때 변화
박 대통령 취임 초부터 감정적
한국 “역사인식 계승 공언 역행” 식민지배 사죄 없고
침략 반성만 담겨 보고서가 비난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은 한국의 민주화 세대인 386세대다. 보고서는 1990년대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김대중-오부치 파트너십 선언 등으로 “우호적이 된 일-한 관계가 노무현 정권 때 변화한다. 노무현 정권에는 386세대가 다수 참가했다. 이 세대는 국내의 (반일적인) 감정을 억압한 강권적 정권에 크게 반대한 세대”라고 했다. 그러나 최근 한-일 관계가 악화된 결정적인 계기가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임을 생각해볼 때 일본 정부의 386세대 비판은 다소 뜬금없게 느껴진다. 또 보고서는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당초부터 심정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고 지금까지 없던 엄격한 대일자세를 가진 대통령”이라고 했다. 보고서는 이어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대안으로 이성적인 면에선 양국이 “가치관을 공유하는 이웃일 뿐 아니라, 안보협력이 지역과 세계 평화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심정적인 면에선 한국이 계속 “골대를 옮기지(대일 요구사항을 자꾸 바꾸는 것을 의미) 못하도록 양국이 함께 화해의 방책을 생각해 책임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보고서는 “일본이 만주사변 이후 대륙에 대한 ‘침략’을 확대했다” “무모한 전쟁으로 아시아 등 여러 나라에 피해를 끼쳤다” “전쟁 과정의 행위에 대해 ‘통절히 반성’한다”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무라야마 담화의 주요 표현인 ‘침략’과 ‘통절한 반성’을 언급해 아베 담화에 이들 표현이 사용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한국이 요구하는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는 언급되지 않았다. 이날 오후 보고서를 제출받은 아베 총리는 “이 보고서를 토대로 우리가 지난 대전에서 뭘 배웠고,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등을 세계에 전하는 담화를 작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담화는 오는 14일 발표될 예정이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이번 보고서 내용이 “양국 관계의 선순환적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우리 정부의 의지와 노력에 역행할 뿐만 아니라,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한다는 그간 일본 정부의 공언과도 배치된다”고 비판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대신 한국인의 대일 감정에 주목
“한-일관계 노무현 정권때 변화
박 대통령 취임 초부터 감정적
한국 “역사인식 계승 공언 역행” 식민지배 사죄 없고
침략 반성만 담겨 보고서가 비난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은 한국의 민주화 세대인 386세대다. 보고서는 1990년대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김대중-오부치 파트너십 선언 등으로 “우호적이 된 일-한 관계가 노무현 정권 때 변화한다. 노무현 정권에는 386세대가 다수 참가했다. 이 세대는 국내의 (반일적인) 감정을 억압한 강권적 정권에 크게 반대한 세대”라고 했다. 그러나 최근 한-일 관계가 악화된 결정적인 계기가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임을 생각해볼 때 일본 정부의 386세대 비판은 다소 뜬금없게 느껴진다. 또 보고서는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당초부터 심정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고 지금까지 없던 엄격한 대일자세를 가진 대통령”이라고 했다. 보고서는 이어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대안으로 이성적인 면에선 양국이 “가치관을 공유하는 이웃일 뿐 아니라, 안보협력이 지역과 세계 평화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심정적인 면에선 한국이 계속 “골대를 옮기지(대일 요구사항을 자꾸 바꾸는 것을 의미) 못하도록 양국이 함께 화해의 방책을 생각해 책임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보고서는 “일본이 만주사변 이후 대륙에 대한 ‘침략’을 확대했다” “무모한 전쟁으로 아시아 등 여러 나라에 피해를 끼쳤다” “전쟁 과정의 행위에 대해 ‘통절히 반성’한다”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무라야마 담화의 주요 표현인 ‘침략’과 ‘통절한 반성’을 언급해 아베 담화에 이들 표현이 사용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한국이 요구하는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는 언급되지 않았다. 이날 오후 보고서를 제출받은 아베 총리는 “이 보고서를 토대로 우리가 지난 대전에서 뭘 배웠고,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등을 세계에 전하는 담화를 작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담화는 오는 14일 발표될 예정이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이번 보고서 내용이 “양국 관계의 선순환적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우리 정부의 의지와 노력에 역행할 뿐만 아니라,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한다는 그간 일본 정부의 공언과도 배치된다”고 비판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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