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만 명의 일본 시민들이 일본 도쿄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쟁법안 폐지와 아베 신조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일본 경찰은 버스로 차벽을 만들어 시위대의 의사당 접근을 막았다. 도쿄/AP 연합뉴스
일본 아베 정권이 추진중인 안보 법제 제·개정안의 폐지를 요구하는 지난 30일 일본 국회 앞 집회에 무려 12만명(주최 쪽 추산)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하면서, 그 사회적 배경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이날 집회는 도쿄·오사카·나고야 등 주요 대도시 뿐 아니라 전국 300여곳 이상의 중소 도시에서도 일제히 열린 것으로 집계됐다. 일본 언론들도 이번 집회의 열기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1896~1987) 전 총리 때 벌어졌던 1960년의 안보 투쟁(미-일 안보조약 개정에 반대)과 비교하는 다양한 분석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사회학자인 오구마 에이지 게이오대학 교수는 31일 <도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목소리를 높인 것은 (최근) 일본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근저에 자리하는 것은 ‘민의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 뜻이 어긋나 있다’는 위기의식과 ‘일본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집회에서 단골 구호로 쓰이는 ‘전쟁반대’와 ‘맘대로 정하지 마’라는 구호가 이런 위기의식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라는 것이다. 요시다 도루 홋카이도대학 교수(정치학)도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지금과 같은) 반대 데모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위정자들과 민의 사이에 엇갈림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슷한 분석을 내놓았다.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경험이다. 일본 시민들은 3·11 원전 참사 이후 원전 반대를 주장하는 집회를 꾸준히 기획하고 참여해 왔다. 여기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SEALDs·이하 실즈) 등 20대 청년들이 집회를 주도하고, 기성세대들이 이에 공명하며 서로가 서로를 독려하는 상승 작용이 벌어지는 중이다. 일본 시민들은 31일에도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1960년 6월 일본 총리관저과 국회 주변에 몰려들었던 안보 투쟁 인파와 이번 안보법제 반대 인파를 비교하는 사진을 퍼 나르고 있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시민들의 압력에 굴복할지는 미지수다. 그는 2006년 펴낸 자서전 <아름다운 나라에>에서 1960년 안보 투쟁 당시 총리관저가 33만명의 시위대에 포위된 상황에서 기시 전 총리가 “나는 결코 틀리지 않았다. (이번 일로) 살해당한다면, 바라는 바다”라는 발언을 했다는 일화를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여러 차례 1960년 안보 투쟁의 경험을 예로 들며 자신이 추진하는 안보 법제의 정당성을 강변한 바 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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