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안세홍 씨.
안세홍씨 사진전 ‘겹겹…’ 도쿄 개막
“이 두 분의 모습이 특히 애착이 가요. 이쪽은 동티모르의 카르민다 도우 할머니, 저쪽이 우리 이수단 할머니.”
지난 4일 오전 일본 도쿄 신주쿠 가구라자카에 자리한 전시공간 ‘세션 하우스’ 2층에서 만난 사진가 안세홍(44)씨는 막바지 개막 준비에 한창이었다. 지난달 서울 전시를 마치고 건너간 이번 사진전 ‘겹겹=사라지지 않은 흔적’에서는 그가 지난해 필리핀·인도네시아·동티모르 등 동남아시아의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발굴해낸 60여명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가운데 45명의 사연과 그들의 얼굴에 ‘겹겹이’ 남겨진 깊은 상처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1996년 <사회평론 길>의 기자로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 집’을 취재한 것을 계기로 위안부 문제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2001년부터 5년간 중국 헤이룽장성이나 후베이성 우한 등을 답사하며 한반도 출신 위안부 피해자 13명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수단 할머니도 그때 만났어요. 평안도 숙천군에서 태어나 18살에 위안부로 끌려오셨대요. 전쟁이 끝나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죠.”
그 뒤 그의 시선은 동남아시아 등으로 넓어졌다. “위안부 문제는 한반도·대만에서는 식민지 피해이지만, 동남아시아에선 전쟁으로 인한 여성의 인권침해 문제죠. 한·중·일만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보편적인 사안으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이번 사진전에서는 ‘성노예’란 표현을 썼어요. 여성들이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은 성노예였으니까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자료 조사에만 1년이 걸렸다. 2013년 처음 현장을 방문한 뒤 2014년 6~9월과 11월에 집중적으로 작업이 이뤄졌다. 현지 이동을 위해 자동차를 빌리고 통역 2명씩을 데리고 작업해야 해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미리 얘길 듣고 이쪽 섬에 가면, 저쪽 섬에 또 피해 할머니들이 있다고 그래요. 그럼 다시 그 섬으로 가는 거예요. 일행들의 일당과 숙식까지 제가 책임져야 했죠.”
일본의 전시공간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었다. 이토 다카시 세션 하우스 기획실 대표가 안씨의 작업에 깊은 공감을 표하며 적극적으로 발벗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는 “넷 우익이나 재특회의 방해 행동이 있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 일본의 전쟁책임이나 식민지배의 문제를 계속 추궁해가는 게 필요하다. 많은 일본인들이 할머니들의 얼굴을 보면서 역사의 사실과 마주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 <주간금요일> <티비에스>(TBS) 등 일본 언론에서도 이번 전시에 적지 않은 관심을 보이며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이건 개인이 아니라 정부가 관심을 갖고 공공사업으로 해야 하는 작업이에요. 그 점을 꼭 강조해주세요.” 안씨는 ‘대한민국 여성가족부’에 꼭 전하고 싶은 말이라고 덧붙였다.
도쿄/글·사진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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