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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일본 대법원 “한국 거주 원폭 피해자 치료비도 전액 지급”

등록 2015-09-08 20:25

국내 거주 원폭 피해자들
45년 법정싸움끝 ‘차별’ 마침표
2500명가량 혜택 볼 듯

손진두씨 등 투쟁으로 공론화
치료비 상한 정해 놓은 마지막 차별
이번 판결로 사라져
“상고를 기각한다.”

8일 오후 3시, 일본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의 한 법정. 한국의 원폭 피해자들이 45년을 기다려온 판결 결과를 알리는 오카베 기요코 최고재판관의 선고는 단 한 문장이었다. 방청석을 지키고 있던 일본 지원단체의 몇몇 시민들이 작게 박수를 치며 환호했지만, “속히 퇴정해 달라”는 법원 직원의 성화에 못 이겨 곧바로 법정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이 수십년 동안 흘려온 땀과 눈물을 떠올려 본다면, 다소 허무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이날 한국인 원폭 피해자 이홍현(69)씨와 피해자 유족 등 3명이 일본에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치료비를 전액 지급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며 일본 오사카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치료비를 전액 지급하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오사카고등재판소는 지난해 6월 이씨 등의 손을 들어줬지만, 오사카부는 이에 반발해 상고한 바 있다.

이번 판결의 결과는 1970년 12월 손진두(2014년 사망)씨의 밀항 투쟁에서 시작된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의 45년간 투쟁이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폭 피해를 입은 일본은 1957년 3월 피폭자들의 치료를 지원하기 위한 ‘원폭 피해자의 의료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다. 법률엔 치료 대상을 일본인으로 한정한다는 ‘국적 조항’은 없었지만, 지원 범위를 ‘일본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한정해 사실상 한국인 등 외국인을 배제하고 있었다.

원폭 휴유증에 시달리던 손씨는 이 법의 적용을 받기 위해 1970년 일본으로 밀항하는 결단을 내렸다. ‘손진두 투쟁’을 통해 전후 20여년 동안 세계의 ‘유일한 피폭국’이라는 피해자 의식 속에 살아온 일본 사회는 같은 피해를 입고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한국인 등 외국의 피폭자라는 ‘타자’를 처음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후 손씨는 6년에 걸친 지루한 법정 투쟁 끝에 1978년 3월 일본 최고재판소로부터 귀중한 승소 판결을 이끌어낸다.

손진두 투쟁 이후 한국인(북한인) 피폭 문제는 일본 사회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다. 이후 한일 양국은 1980~1986년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의 일본 방문치료 사업 등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노력을 진행한다. 그러나 한국인 피폭자들은 일본에 거주하는 피폭자들과 똑같은 치료를 받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며 투쟁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1990년 이맹희씨처럼 일본 정부에 항의해 자살을 기도한 피폭자도 있었다.

투쟁의 큰 전환점이 된 것은 1998년 10월 시작된 ‘곽기훈 재판’이었다. 이 재판으로 2003년 “해외에 거주하는 이는 수급권을 잃는다”는 후생노동성의 ‘402호 통달’이 폐지된다. 이후 한-일 관계의 발전과 피해자들의 투쟁으로 2008년 피폭자 원호법이 개정돼 한국에서도 피폭자 수첩을 교부받을 수 있게 됐다. 그렇게 해서 남은 유일한 차별은 일본 거주 피폭자들과 달리 1년에 30만엔으로 정해져 있던 치료비의 상한선이었다. 그 제한이 이번에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원폭 피해자 2세들의 피해 인정과 지원 문제는 여전히 남았다.

오랫동안 한국인 피폭자 문제 해결을 위해 애써온 이치바 준코 ‘한국원폭피해자를 구원하는 시민모임’ 대표는 판결 직후 <한겨레>와 만나 “정말 기쁜 판결이지만, 그동안 너무 많은 피해자들이 숨지고 말았다. 일본 정부는 재판에서 지지 않는 한 한치도 양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본 후생노동성 자료를 보면, 3월 말 기준으로 일본 밖에 살고 있는 피폭자 수첩 소지자는 약 4300명, 이 가운데 한국 거주자는 약 2500명(북한 거주자 1명)이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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