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8일 중의원에서 야당이 안보법안 통과를 지연시키기 위해 이날 제출한 총리 불신임안이 부결되자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안보법제 강행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자위대법 등 10개법 고치고
‘국제평화지원법’ 새로 제정
자국 공격 안받아도 ‘무력행사’
미군 후방지원 등 명목 내세워
분쟁지역 자위대 파병 가시화
자위대법 등 10개법 고치고
‘국제평화지원법’ 새로 제정
자국 공격 안받아도 ‘무력행사’
미군 후방지원 등 명목 내세워
분쟁지역 자위대 파병 가시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정치적 명운을 걸고 19일 참의원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안보법제 제·개정안은 자위대법 등 10개 법의 개정안과 새로 제정되는 국제평화지원법으로 구성돼 있다.
아베 총리가 내세우는 법 제·개정의 이유는 변화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안보환경 속에서 “어떤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현행 헌법 아래에서 무엇이 가능할지 논의가 필요하다”(지난해 7월 집단적 자위권 각의결정 후)는 것이다. 그와 함께 “일본이 적극적 평화주의를 통해 국제평화에 공헌하겠다”는 주장이 따라붙는다. 이 주장에선 일본의 군사적 역량과 역할을 강화하려는 아베 총리의 야심이 드러난다.
이번 법안 통과 강행으로 일본은 자국이 직접 공격받지 않더라도 밀접한 타국이 공격받아 일본의 존립이 위태로워지는 때(존립위기사태)에 무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이른바 집단적 자위권 행사다. 그러나 현행 일본 헌법은 “국제분쟁의 해결 수단으로 무력 사용”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군이 1960~70년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것처럼 대규모 자위대 전투부대를 국외에 파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아베 총리는 자위대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로 ‘호르무즈 해협 기뢰 제거’ ‘일본인이 탄 미국 함선 방어’ 등을 제시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이란 핵협상 타결 등 국제 정세의 변화로 이 두 가지 사례는 일본 국회 내 심의에서도 정당성을 상실했다. 고이즈미 내각의 안보정책을 총괄했던 야나기사와 교지 전 관방부장관보나 제1야당인 민주당에선 “일본의 안보를 위한 것이라면 집단적 자위권이 아닌 개별적 자위권을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일본의 안보를 위해서라면 집단적 자위권은 사실상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일본 군사 전문가들은 이번 법안의 핵심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아닌 “자위대의 후방지원과 평화지원활동(PKO)의 제한 완화”라고 분석한다. 법안에 담긴 중요영향사태법과 국제평화지원법 등에 근거해 자위대는 미군 또는 다국적군을 후방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세계의 거의 모든 무력분쟁에 광범위하게 개입할 수 있게 됐다. 이 두 법을 통해 일본 정부는 ‘비전투지역’이라는 개념을 크게 확대해 자위대의 작전 범위를 ‘실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지역’의 코앞까지 확장했고, 그동안 금지했던 탄약 보급, 발진 준비 중 전투기에 대한 급유도 허용했다. 이번 법안 통과로 중동 등에 대규모 병참부대를 파견해달라는 미국의 요청이 있으면 자위대가 파병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본 시민들이 “일본이 미국의 전쟁에 말려들어 무고한 희생자를 낼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이번 법안은 ‘미국과의 대등한 동맹’을 실현하려는 아베 총리의 의도와 자위대를 활용해 군사적 부담을 완화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뒤얽힌 결과다. 일본과 미국의 동상이몽이 맞아떨어진 것이 이번 법안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아베 총리는 총리 취임 직후인 2013년 2월 미국의 대일본 정책에 큰 영향을 끼치는 ‘재팬 핸들러’들이 모인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연설하면서 “일본이 돌아왔다”고 선언했고, 미국 정부는 이에 화답하듯 2013년 10월 미-일 안전보장협의위원회(2+2 회의)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공개 지지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 4월 말 미국 의회 연설에선 “법안을 이번 여름까지 통과시키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그 결과 일본인들은 자국 안보와 별 관계가 없는 해외 전쟁에 동원돼 숨질 위험성이 커졌고, 한국인 등은 동아시아의 군비 경쟁 격화 등으로 이전보다 더 불안정한 안보환경 아래 놓이게 됐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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