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가지타 다카아키 일본 도쿄대학 우주선연구소장이 6일 도쿄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활짝 웃으며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일본 잇단 노벨상 수상 배경
5~6일 연속으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 과학계의 놀라운 성과는 일본 기초과학의 전통과 저변이 그만큼 넓고 강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일본은 6일 가지타 다카아키(56) 도쿄대학 우주선연구소장(물리학상)을 포함해 지금까지 2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냈다. 2000년 이후 과학 분야에서 일본이 배출한 수상자는 12명으로 미국에 이어 2위이다.
가지타 교수의 사례를 보면, 일본의 기초과학이 왜 이렇게 강한지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일본은 그동안 물리학, 특히 소립자물리학에서 세계적인 연구자를 많이 배출해왔다.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자를 묶은 중성자의 존재를 예측한 유카와 히데키(1949년)를 비롯해 도모나가 신이치로(1965년), 난부 요이치로(2008년) 등의 연구자를 꼽을 수 있다. 24명의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절반 정도인 11명이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올해 가지타 교수에게 수상의 영광을 안겨준 중성미자(뉴트리노) 연구는 세계에서 일본이 가장 앞선 분야로 꼽힌다. 가지타가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스승인 고시바 마사토시(89) 도쿄대 특별명예교수의 선행 연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시바는 1983년 기후현 다카야마시 가미오카 광산의 폐광에 ‘가미오칸데’라는 거대 관측기구를 설치했다. 고시바는 이 기구를 통해 1987년 16만광년 밖에서 대폭발한 초신성으로부터 날아온 중성미자를 세계 최초로 관측해내 200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수상자 24명중 11명이 물리학상
중성미자 분야 세계서 독보적
100여년 전 메이지 시대 투자
지금의 혁혁한 성과로 꽃피워 고시바의 연구는 같은 대학의 도쓰카 요지(1942~2008)로 이어진다. 그는 1995년 가미오칸데를 20배나 크게 한 ‘슈퍼 가미오칸데’를 설치해 이듬해부터 관측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도쓰카와 가지타는 1998년 세계 최초로 ‘중성미자 진동’이라는 현상을 관찰해냈다. 중성미자 진동이란 중성미자가 이동을 하면서 ‘뮤(μ)형’에서 ‘타우(τ) 형’으로 모습을 바꾸는 현상을 뜻한다. 이와 관련해 앞서 또다른 일본인 물리학자인 사카타 쇼이치(1911~1970)는 만약 중성미자에 질량이 있다면 진동 현상이 일어날 것임을 이론적으로 증명해낸 바 있다. 이들이 중성미자 파동을 확인했으니 ‘중성미자엔 질량이 없다’는 기존 이론물리학계의 정설이 깨지고 실제론 질량을 갖고 있음이 증명된 것이다. 이런 연구를 뒷받침한 것은 일본의 탄탄한 제조업이었다. 슈퍼 가미오칸데는 지름 29m, 높이 42m의 거대한 수조의 벽면에 모두 1만2000개의 광전자 증배관이 부착된 거대 관측기구다. 이 장치의 핵심인 광센서를 개발한 것은 하마마쓰포토닉스라는 일본의 제조업체였다. 이 업체가 1980년 광센서를 개발하지 못했다면 중성미자 관측 연구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학벌보다는 능력을 중시하는 일본 특유의 연구 풍토, 지난해 일본을 뒤흔들었던 오보카타 하루코 연구원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스캔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규명해내는 건전한 자정능력 등도 일본 과학계의 강점이다. 흥미로운 것은 가지타는 물론 지난해 수상자 나카무라 슈지(61)도 과학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로 애니메이션 <철완 아톰>(한국에선 ‘우주소년 아톰’)의 과학자인 ‘코주부 박사’(오차노미즈 박사)를 꼽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림자도 있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의 과학적 성취는 대부분 지금부터 20~30년 전인 1980~90년대 이뤄진 성과이기 때문이다. 19세기 말인 메이지시대부터 꾸준히 이뤄진 기초과학 투자가 일본이 최고의 경제호황을 누리고 있었던 시절에 혁혁한 과학적 성과를 낸 뒤 지금 그 과실을 수확하고 있는 셈이다. <니혼게이자이>는 “21세기 들어 일본인의 (노벨상) 수상이 이어지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현재 일본에선 생산 논문 수가 줄어드는 등 연구개발 능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징후도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중성미자 분야 세계서 독보적
100여년 전 메이지 시대 투자
지금의 혁혁한 성과로 꽃피워 고시바의 연구는 같은 대학의 도쓰카 요지(1942~2008)로 이어진다. 그는 1995년 가미오칸데를 20배나 크게 한 ‘슈퍼 가미오칸데’를 설치해 이듬해부터 관측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도쓰카와 가지타는 1998년 세계 최초로 ‘중성미자 진동’이라는 현상을 관찰해냈다. 중성미자 진동이란 중성미자가 이동을 하면서 ‘뮤(μ)형’에서 ‘타우(τ) 형’으로 모습을 바꾸는 현상을 뜻한다. 이와 관련해 앞서 또다른 일본인 물리학자인 사카타 쇼이치(1911~1970)는 만약 중성미자에 질량이 있다면 진동 현상이 일어날 것임을 이론적으로 증명해낸 바 있다. 이들이 중성미자 파동을 확인했으니 ‘중성미자엔 질량이 없다’는 기존 이론물리학계의 정설이 깨지고 실제론 질량을 갖고 있음이 증명된 것이다. 이런 연구를 뒷받침한 것은 일본의 탄탄한 제조업이었다. 슈퍼 가미오칸데는 지름 29m, 높이 42m의 거대한 수조의 벽면에 모두 1만2000개의 광전자 증배관이 부착된 거대 관측기구다. 이 장치의 핵심인 광센서를 개발한 것은 하마마쓰포토닉스라는 일본의 제조업체였다. 이 업체가 1980년 광센서를 개발하지 못했다면 중성미자 관측 연구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학벌보다는 능력을 중시하는 일본 특유의 연구 풍토, 지난해 일본을 뒤흔들었던 오보카타 하루코 연구원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스캔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규명해내는 건전한 자정능력 등도 일본 과학계의 강점이다. 흥미로운 것은 가지타는 물론 지난해 수상자 나카무라 슈지(61)도 과학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로 애니메이션 <철완 아톰>(한국에선 ‘우주소년 아톰’)의 과학자인 ‘코주부 박사’(오차노미즈 박사)를 꼽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림자도 있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의 과학적 성취는 대부분 지금부터 20~30년 전인 1980~90년대 이뤄진 성과이기 때문이다. 19세기 말인 메이지시대부터 꾸준히 이뤄진 기초과학 투자가 일본이 최고의 경제호황을 누리고 있었던 시절에 혁혁한 과학적 성과를 낸 뒤 지금 그 과실을 수확하고 있는 셈이다. <니혼게이자이>는 “21세기 들어 일본인의 (노벨상) 수상이 이어지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현재 일본에선 생산 논문 수가 줄어드는 등 연구개발 능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징후도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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