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시리아 소녀(왼쪽), 소녀의 모습을 바탕으로 그린 인종차별적인 삽화.
일본의 한 여성 만화가가 5년 가까이 이어진 내전으로 수백만명의 난민이 발생한 시리아에서 고통받는 소녀의 모습을 바탕으로 인종차별적인 삽화를 그렸다. 재일 조선인·한국인을 상대로 한 일본의 인종주의가 이제 무고한 시리아 난민으로 공격 대상을 확장한 모양새다.
일본의 만화가 하스미 도시코는 지난달 초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쓸쓸한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시리아 소녀의 사진을 바탕 삼아 오히려 이들을 멸시하는 삽화를 그렸다. 하스미는 애초 사진에 담긴 소녀의 눈빛을 이기적으로 뻔뻔한 분위기로 바꾼 뒤 “남의 돈으로 ‘안전하게 살고 싶다, 청결한 삶을 살고 싶다,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 자유롭게 놀고 싶다, 사치가 하고 싶다, 어떤 노력도 없이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싶다’. 그렇다, 난민이 되자”는 메시지를 첨부했다. 오랜 내전으로 인한 고통과 죽음의 위협을 넘어 고향을 등져야 하는 난민들을 외국의 세금을 축 내려 하는 이들로 묘사한 것이다.
삽화의 원본은 국제 구호단체 ‘세이브 더 칠드런’의 사진가인 조너선 하임스가 시리아 국경 근처인 레바논 난민캠프에서 찍은 6살 소녀의 사진이다. 그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순진무구한 아이의 사진이 뒤틀린 편견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것에 충격과 큰 슬픔을 느낀다. 시라아인의 고통을 왜곡해 전하고 있다.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한다”고 분노를 토했다. 일본 누리꾼도 인터넷을 통해 이 삽화를 없애자는 서명운동을 벌여, 1만명의 서명을 모은 상태라고 <마이니치신문>이 8일 전했다.
시리아 난민에 대한 하스미의 삐뚤어진 시선은 최근 일본 사회를 병들게 하는 인종주의가 이제 곳곳에 스며들어 자신과 별 관계가 없는 약자까지 공격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스미의 페이스북을 보면, 쭈그려 앉은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을 걸고 “일본인의 돈으로 안전하게 살고 싶다. 그렇다, (일본에) 밀항을 하자”는 삽화 등 다른 혐한 메시지도 공개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이런 일본의 병리현상을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이번 하스미 소동을 다루며 “아베 정권이 최근 유엔(UN) 총회 연설에서 시리아 난민들에 대한 자금지원 의사는 밝혔지만 난민을 일본으로 수용하기는 거부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재일 조선인을 상대로 한 ‘헤이트 스피치’(인종혐오 발언)를 규제해야 한다는 일본 시민사회의 요구에 대해서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며 관련 논의를 주저하고 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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