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독점 체제 깨지고 시장 자유화
전기·인터넷 서비스 결합 상품 나와
재생에너지 산업에 새 기회 될수도
전기·인터넷 서비스 결합 상품 나와
재생에너지 산업에 새 기회 될수도
‘전력 강자’와 ‘통신 괴물’의 연대?
지난 7일 일본 최대 전력회사인 도쿄전력은 흥미로운 보도자료를 냈다. 일본 통신업계의 신흥 강자 소프트뱅크와 전기·통신·인터넷서비스를 한데 묶은 ‘결합상품’ 개발을 위한 업무제휴를 시작한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에 빗대 말하면 한국전력과 에스케이텔레콤이 전기와 통신 상품을 결합한 서비스 제공을 위해 힘을 모으기로 했다는 말이 된다. 일본의 관련 업계가 크게 들썩인 것은 물론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답은 2016년 4월 시작되는 일본 전력시장 자유화에 있다. 일본 전력시장은 그동안 최북단의 홋카이도부터 최남단의 오키나와까지 전국을 10개 지역으로 나누고 각 지역에서 하나의 전력회사가 전기를 공급하는 ‘지역 독점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말부터 일본의 전력시장에도 경쟁 원리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져 1995년 발전시장에 경쟁입찰제를 도입하는 것을 시작으로 점진적인 자유화가 이뤄져 왔다. 이제 그 마지막 단계로 소매 전력시장의 자유화 시행을 눈앞에 둔 것이다. 전력회사들엔 ‘나와바리’(자신의 담당 지역)를 깨는 무한경쟁의 시작이지만, 소비자에겐 여러 회사의 계약조건을 비교해 최적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생겼음을 뜻한다.
이번 제휴는 두 회사 모두에게 ‘윈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도쿄전력은 전력 자유화가 시작되면 안방인 도쿄 등 수도권을 지키면서 오사카·나고야 등 다른 대도시에서 신규 고객을 모아야 한다. 도쿄전력이 가장 기대하는 것은 소프트뱅크의 막강한 영업망과 기존 고객들이다. 소프트뱅크는 지난해 말 현재 전국에 2600개의 점포와 5000만명이나 되는 고객을 거느리는 통신업계의 ‘빅3’이다. 소프트뱅크로선 이번 제휴로 통신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도쿄전력이 오랫동안 쌓아온 전력사업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사장은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직후 탈핵을 향한 집념을 여러 차례 밝히며 2011년 10월 ‘에스비(SB)에너지’라는 전력회사를 설립한 바 있다. 이 업체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앞으로 적극 보급해 나갈 예정이다.
실제로 두 업체는 보도자료에서 “고객들의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양사가 공동으로 새로운 서비스 기획·개발을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프트뱅크의 통신상품과 도쿄전력의 전력상품을 동시에 쓰는 고객에겐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등 공격적인 고객 유치전에 뛰어들겠다는 선언으로 해석된다.
이번 전력 자유화는 3·11 참사 이후 일본이 공들이고 있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산업에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일본 언론들은 경제산업성에 전력사업체로 등록을 신청한 업체 가운데 태양광 패널을 통해 만든 전력을 주변 지역에 파는 ‘가나가와현 태양광발전협회’, 바이오매스(생물연료)를 활용해 발전을 시도하는 나가노현의 ‘그린 서클’ 등 재생에너지 업체들도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기존 전력업체들도 탈핵 지지층을 겨냥해 태양광 등으로 생산된 전기만을 판매하는 새 상품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일본 전력시장은 연간 15조엔(약 144조원)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9일 “이번 조처로 가스회사, 석유회사, 해외의 자원 개발에 강점을 갖는 상사 등 다양한 업체가 전력시장에 뛰어들어 전력의 판매 방법이 다양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경제산업성은 8일 현재 82개 업체가 전력사업자로 등록을 신청해 40개 업체가 심사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신문은 내년 4월까지 등록 기업은 100개를 넘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15조엔의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쟁탈전이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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