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정상회담 가능성 미리 꺼내 주도권 뺏겨
일, 한국 기대 못치지지만 성의 보이는 표현 고를듯
일, 한국 기대 못치지지만 성의 보이는 표현 고를듯
결국 ‘빈손’ 회담이 되나?
청와대가 26일 그동안 초미의 관심을 모아 온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 “11월2일에 여는 쪽으로 일본 쪽에 제의했으며, 회신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밝히며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간 최대 현안인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의 전향적 태도를 끌어내기 위한 배수진을 쳤다. 그러나 일본에선 “(한국이 요구하는) 아베 총리의 사죄 발언은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며 한국 정부의 애를 태우고 있다.
스가 요히시데 일본 관방장관은 26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요구하고 있는 아베 총리의 사과 등의 문제에 대해 “항상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 양 정상이 어려운 문제가 있을수록 회담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원론적인 태도를 다시 확인했다.
일본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반응도 차갑긴 마찬가지다. <마이니치신문>은 27일 “총리가 다시 한번 사죄하는 일은 없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는 일본 정부 관계자의 발언을 소개했다. <요미우리신문>도 일본이 한국의 요구를 거부하자 “오찬을 생략하고 회담 시간을 30분으로 하는 스케줄을 제시했다”는 한국 정부의 반응도 소개했다. 이에 앞서 일본 정부 관계자는 “한국은 (위안부 문제) 해결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꿈을 꾸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국면에는 들어서 있지 않다”는 싸늘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 정부가 일본의 사죄에 목을 매는 것은 아베 총리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에 따라 박근혜 정부가 지난 2년 8개월 동안 추진해 온 대일외교의 성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성의 있는 조처를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며 일본과 대립해 왔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일본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선조처 등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지만, 정상회담을 앞두고 ‘사죄’의 발언을 요구하는 등 사실상 요구사항을 크게 낮춘 상태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가 아베 총리의 판단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몰린 것은 양국간 진행 중인 치열한 외교전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으로 보인다. ‘악수’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박 대통령이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5일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한 연설과 질의응답을 통해 “아베 총리와 (한·중·일 3개국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을 계기로) 정상회담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이 발언으로 정상회담 개최가 사실상 기정사실화되자, 일본이 이번 회담에서 위안부 문제에 어떤 태도를 보일지 등의 중요 문제에서 상당 부분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결국엔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박 대통령의 체면을 살려줄 수 있는 일종의 외교적 배려를 할 가능성이 크다. 아베 총리는 지난 8월14일 발표한 아베 담화(전후 70주년 담화)에서 “20세기 전시 하에 수많은 여성들의 존엄과 명예가 크게 손상된 과거를 우리 가슴에 계속 새기겠습니다. 그러기에 바로 일본은 이런 여성들의 마음에 늘 다가가는 나라가 되려고 합니다”는 뜻을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또 한국 정부에게 큰 외교적 타격을 입힐 경우, 양국간 역사 갈등을 끝내고 한·미·일 3각 안보동맹을 심화시키고자 하는 미국의 심기를 건드릴 가능성도 있다. 결국 아베 총리는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의 기대엔 못 미치지만, 일본으로선 성의를 보였다고 할 수 있는 정도의 표현을 골라 한국에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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