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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일본 자민당 60년, 다양한 파벌의 견제의 역사…아베 불통에 길을 잃다

등록 2015-11-29 18:16수정 2015-11-29 22:28

29일 일본 자민당 창립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아베 신조(가운데) 일본 총리가 당원들과 함께 손을 들어 “만세”를 외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일-미 동맹은 반석에 올라있다”며 자민당이 강행 통과시킨 안보 법제 제·개정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아베 총리는 전날인 28일 초당파 의원 연맹 ‘창생일본’ 연수회가 끝난 뒤에는 “헌법 개정을 비롯해 점령 시대에 만들어진 여러 구조를 바꿔나가는 게 창당의 원점”이라고도 말했다. 자민당은 29일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 때 A급 전범들을 재판한 극동군사재판(도쿄재판)까지를 검증하는 당내 기구도 발족했다. 도쿄/AFP 연합뉴스
29일 일본 자민당 창립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아베 신조(가운데) 일본 총리가 당원들과 함께 손을 들어 “만세”를 외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일-미 동맹은 반석에 올라있다”며 자민당이 강행 통과시킨 안보 법제 제·개정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아베 총리는 전날인 28일 초당파 의원 연맹 ‘창생일본’ 연수회가 끝난 뒤에는 “헌법 개정을 비롯해 점령 시대에 만들어진 여러 구조를 바꿔나가는 게 창당의 원점”이라고도 말했다. 자민당은 29일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 때 A급 전범들을 재판한 극동군사재판(도쿄재판)까지를 검증하는 당내 기구도 발족했다. 도쿄/AFP 연합뉴스
요시다 ‘실리 노선’ 기시 ‘자주 노선’ 등
서로 견제하며 파벌간 정권교체 60년
아베 집권뒤 상대계파 출마 봉쇄 등
“평화헌법 고수” “안보법안 반대” 묵살
장기 집권 기반인 다양성·융통성 상실
지난 9월17일 오후 4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밀어붙인 안보법제 제·개정안을 저지하기 위해 야당이 제출한 고노이케 요시타다(77) 참의원 특별위원회 위원장에 대한 불신임안이 부결된 직후였다. 고노이케가 위원장석으로 돌아온 것을 신호로 전광석화같이 일이 진행됐다. 야당 의원들이 방심한 틈을 타 자민당 남성 의원들이 재빠르게 위원장석을 둘러쌌다. 고노이케 위원장은 자민당 의원들의 철벽 방어망 안에 숨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뼈대로 한 안보 관련법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이로써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전한 뒤 70년 동안 유지해온 ‘전수방위’(오로지 방어를 위해서만 무력을 사용한다) 원칙이 사실상 무너지고, 일본은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의 지위를 회복하게 됐다.

방송을 통해 일본 전역에 중계된 이날의 소동에서 단연 눈에 띈 것은 영화배우 출신으로 2013년 7월 참의원 의원에 당선된 야마모토 다로(40·생활당)가 내건 조그만 피켓이었다. ‘자민당이 죽은 날.’ 창당 60년을 맞는 자민당이 예전의 품격을 잃고 ‘날치기’를 감행하는 지경까지 추락한 현실을 고발한 애도문이었다.

지난 15일 일본의 ‘만년 집권당’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이 창당 60주년을 맞았다. 자민당은 진보 진영의 사회당에 맞설 수 있는 보수파 단일 정당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옛 일본민주당과 자유당이 합당해 1955년 11월15일 창당됐다. 자민당은 이후 1993년 8월 등장한 비자민 연립정권에 1년, 2009년 9월 민주당에 3년3개월 동안 정권을 내준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집권당의 자리를 유지하며 전후 일본의 영욕을 이끌어왔다.

그러나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끌고 있는 현재의 자민당에 대해선, 당의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한 중요한 덕목인 다양성과 융통성을 잃어버린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자민당의 60년사는 요시다 시게루 총리(재임기간 1948년 10월~1954년 12월)로 대표되는 ‘실리 노선’과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총리(1957.2~1960.7)가 대변하는 ‘자주 노선’이 벌여온 갈등의 역사라 할 수 있다.

1945년 8월 패전한 뒤 전후 일본이 나아가야 할 큰 방향을 제시한 이는 요시다 총리였다. 그가 내건 정치철학은 돈이 드는 ‘안보’는 미국에 맡기고 일본은 경무장에 만족하며 경제 부흥에 집중한다는 ‘요시다 독트린’이었다. 요시다는 일본의 평화헌법에 대해 “일본이 세계에 자랑해야 할 매우 훌륭한 헌법”이라는 평가를 남기기도 했다.

이에 맞선 기시 총리의 별명은 ‘쇼와의 요괴’였다. 그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도조 히데키 내각(1941.10~1944.7)의 각료(상공대신)로 전시 통제경제를 기획했다. 그로 인해 기시는 패전 뒤 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돼 형무소에 수감되는 치욕을 겪는다. 그는 내심으론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해 ‘틀리지 않은 전쟁’이었다고 생각했고, 죽을 때까지 미국의 점령정책의 핵심 산물이었던 평화헌법에 대해 “일본인의 손으로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기시는 1957년 총리 취임 뒤 미-일 안보조약을 좀더 평등하게 개정하는 작업에 나섰다. 일본 시민들은 국회 앞에 무려 32만명이 모여든 1960년 안보투쟁으로 이에 맞섰다. 결국 기시는 1960년 6월19일 안보조약 개정을 마무리한 뒤 사임한다.

이후 정권을 이어받은 것은 요시다의 사상적 후계자인 이케다 하야토 총리(1960.7~1964.11)였다. 그는 소득을 2배로 늘린다는 ‘국민소득 배증 계획’을 추진했다. 이후 기시의 동생(기시 노부스케의 원래 이름은 사토 노부스케였는데 기시라는 성을 가진 아버지 친척의 양자가 됐음)인 사토 에이사쿠 총리(1964.11~1972.7)의 재임 시절인 1968년 일본은 국민총생산(GNP) 세계 2위로 올라섰다.

그다음 등장한 인물이 자민당의 ‘분배정치’ 모델을 완성한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1972.7~1974.12)였다. 그는 1972년 저서 <일본열도개조론>에서 일본 전국에 도로와 철도 등의 공공사업을 벌여 국토를 균형있게 발전시키겠다는 소신을 밝혔고, 이를 그대로 실현했다. 다나카에 의해, 도시에 집중됐던 국가 예산을 정계-관계-재계-지역 유권자를 잇는 커넥션을 통해 일본 전체에 골고루 나누는 자민당 특유의 분배정치가 완성됐다. 그와 함께 파벌을 중심으로 ‘돈과 숫자(의석수)’를 주물러 정치적 갈등을 조정하는 의사결정 과정도 정착된다. 그러나 다나카식 금권정치는 이후 일본 정치를 부패로 얼룩지게 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그러나 이런 분배정치 모델은 1980년대 후반 일본 경제의 거품이 터지며 한계에 봉착한다. 잃어버린 20년의 시작이었다. 경제 성장이 정체되자, 성장을 통해 파이를 키우고 이렇게 늘어난 파이를 자민당 파벌 간 이해 조정을 통해 분배하는 물적 토대가 허물어졌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인물이 “낡은 자민당을 부숴버리겠다”는 구호와 함께 나타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2001.4~2006.9)였다. 그는 더 이상 파이를 키울 수 없으니, 분배하는 파이의 크기를 줄여야 한다는 ‘고통분담론’을 해법으로 내놨다. 고이즈미는 쓸데없는 공공사업을 줄이고, 공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하며, 사회보장 지출을 삭감했다.

잃어버린 20년을 지나는 동안 정치제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난다. 가장 큰 계기는 1996년 소선거구제 도입이었다. 예전 중선거구제(하나의 선거구에 3~6명 선출)에선 하나의 선거구에 같은 당 후보자가 여러 명 출마하다 보니, 정책보다는 파벌로부터 내려오는 선거자금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의 당선자를 내는 소선거구제에선 공천권을 가진 당 총재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현재 자민당 파벌은 소속 의원들이 여러 정보를 교환하는 ‘살롱’ 정도로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이어 아베 총리의 등장과 맞물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인 쇠퇴’라는 지정학적 변화가 점점 분명해졌다. 아베 총리는 지난 9월 안보 관련법을 강행 통과시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한다는 우익들의 오랜 염원을 현실화했고, 개헌까지 염두에 둔 정치적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한동안 물밑에 있던 기시류의 자주 노선이 부상한 것이다.

나카노 고이치 조치대학 교수(정치학)는 “예전 자민당에선 여러 파벌들이 경쟁해 (총리가) 민의와 어긋나는 정책을 추구하면 바로 하극상이 벌어지는 틀이 존재했다. (다음 총재라는) 대안이 항상 준비가 되어 있어 (당 대 당의 정권교체는 아니지만) 파벌 사이의 ‘정권교체’가 당을 활성화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의 자민당에선 그런 활력을 찾아볼 수 없다.

이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 9월9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였다. 아베 총리는 총재 선거에 출마 의사를 밝힌 노다 세이코(55) 전 총무회장을 주저앉히고 무투표 재선을 이뤄냈다. 노다 전 총무회장은 <아사히신문>인터뷰에서 “자민당엔 다양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것 같은 무모한 도전을 했지만 결국 꿈을 접어야 했다고 밝혔다.

과반수의 일본인들은 아베 정부가 추진해온 특정비밀보호법 제정, 집단적 자위권 행사, 원전 재가동 등의 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그래도 아베 총리는 꿈쩍하지 않는다. 다카다 겐(70) ‘허용하지마 헌법개악·시민연락회’ 사무국장은 “예전 같으면 (연립 여당인) 자민당-공명당 내에 (법안에 반대하는) 분열이 일어났겠지만,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그게 안보 관련법 통과를 막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엔에이치케이>방송은 7월18일 방송한 ‘전후 70년 일본의 초상: 정치의 모색’에서 기시 전 총리의 육성을 소개했다. “국회 주변에선 데모가 이뤄지고 있지만, 고라쿠엔(야구장)에선 수만명이 야구를 즐기고 있고, 긴자 거리에선 젊은 남녀가 손을 잡고 걷고 있다. 이게 대중이다. 대중에게 끌려가는 게 민주정치가 아니다. 이들의 2~3보 앞에서 민중을 이끄는 게 민주정치의 리더십이다.” 민의를 무시하는 아베의 불통 리더십에 외조부 기시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창당 60년의 자민당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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