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일본 참의원 선거 당시 집권당이던 민주당 선거대책본부 건물 벽에 민주당 후보들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도쿄/신화 연합뉴스
국제 초점 I 내년7월 참의원 선거 정치권 요동
“구마모토는 의원 1명을 뽑는 선거구입니다. 이 지역에서 어떻게든 일본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싶습니다.”
지난 5일 일본에서도 보수세가 강해 ‘보수의 왕국’으로 불리는 구마모토현에서 흥미로운 기자회견이 열렸다. 현내 시민단체 50곳이 모여 만든 ‘전쟁을 허용하지 않는다, 9조를 부수지마 총결집행동 실행위원회 구마모토네트’(이하 구마모토넷)가 야당을 향해 내년 7월 열리는 참의원 선거에서 현의 ‘야권 단일후보’를 세울 것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 단체는 지난 9월 국회에서 강행 통과된 안보법 폐기 등 3대 요구안을 내놓고, 이에 동의하는 야당이 힘을 합쳐 선거를 치러 자민당의 폭주를 견제해야 한다고 했다. 이틀이 지난 7일, 노다 구니하루 구마모토넷 대표 등은 일본공산당 구마모토현 위원회를 방문하기도 했다. 후보 단일화를 압박하기 위한 행보였다.
시민사회, 민주당 압박하며
야권연대 ‘불씨’ 지펴
공산당 등 안보정책 눈높이 달라
‘연대’의 길 걸림돌 많지만
야권후보 단일화 땐
지난 선거 석패한 선거구 역전 가능성 아베정권 심판 ‘중간평가’ 넘어
평화헌법 운명 쥔 ‘중대선거’로 일본의 상원에 해당하는 참의원은 의원 임기가 6년으로, 3년마다 의석의 절반을 새로 뽑는다. 따라서 내년 여름엔 전체 242석 가운데 절반인 121석을 놓고 선거가 치러진다. 지역구 73석, 비례대표 48석으로 의석 배분이 정해진 상태다. 이 가운데 구마모토처럼 인구가 적은 지방 현에선 한 현에서 한명, 혹은 돗토리·시마네현처럼 두 현을 하나의 선거구로 묶어 한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1인 선거구’(32개)가 존재한다. 참의원 선거에 대비해 구마모토현의 민주당·사민당, 일본 최대 노조인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는 여성인 아베 히로미(49) 변호사를 야권 단일후보로 세우겠다는 결정을 내린 상태다. 문제는 이모 요시야(60)를 독자 후보로 공천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공산당이었다. 고심하던 공산당이 15일 결단을 내렸다. 히다카 신야 공산당 구마모토현 위원장은 이날 구마모토현청에서 민주당·유신당 등 야당들과 만나 “아베 정권 타도를 위해 선거 협력에 일치했다. 전국적으로 이런 흐름이 확산되길 바란다”며 독자 후보의 공천 취소를 약속했다. 이 열기를 이어받은 구마모토넷은 ‘야권 단일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선거대책본부를 만들어 적극적인 지원 운동에 나설 예정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코앞에 두고 적전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한국의 야권과 달리 일본의 야권은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안보법제 철폐’라는 하나의 큰 이슈 아래 급속히 결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월 충격적인 안보법 ‘날치기 통과’ 이후 야권 연대를 처음 부르짖고 나선 것은 공산당이었다. 시이 가즈오 위원장은 자민당이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킨 직후 “‘전쟁법을 폐지하고, 입헌주의를 되살린다’는 하나의 이슈에 일치하는 모든 정당·단체·개인 등이 공동으로 ‘전쟁법 폐지를 위한 국민연합정부’를 수립하길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 제안이 일본 정계에 큰 파장을 몰고 온 것은 공산당이 일본 정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독특한 위치 때문이다. 공산당은 그동안 자신들의 이념적 순수성 등을 위해 기존 정당과의 연대에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그래서 여야가 박빙의 승부를 이어갈 때도 공산당의 제3후보가 3~5%의 표를 가져가는 바람에 자민당이 손쉬운 승리를 거두는 일이 적지 않았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의 12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공산당의 정당 지지율은 5.0%로, 제1야당인 민주당(8.5%)의 지지율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공산당이 야권 후보 단일화에 합류한다면, 지난 선거에서 야당이 근소한 차이로 석패한 선거구에서 역전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민주당-공산당의 선거 협력엔 걸림돌이 적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호소노 고시 정조회장, 마에하라 세이지 전 외상 등 민주당 내 우파 의원들의 맹렬한 반발이었다. 실제로 한-일 강제병합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1841~1909)의 외고손자인 마쓰모토 다케아키 전 외상은 이 문제로 탈당까지 감행했다. 미-일 동맹을 중시하는 민주당과 미-일 동맹은 물론 자위대도 부정하는 공산당 사이엔 적지 않은 안보 정책상의 차이가 있는 게 사실이다. 미온적인 민주당을 압박하며 야권 연대의 불씨를 살린 것은 일본 시민사회였다. 그 중심엔 지난 8~9월 일본 국회 앞의 ‘안보투쟁’을 이끌었던 ‘전쟁을 허용하지 않는다, 9조를 부수지마 총결집행동 실행위원회’와 ‘실즈’(SEALDs·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 등이 있었다. 이들은 10월부터 민주당 등 5개 야당과 한달에 한번꼴로 ‘의견 교환 모임’을 열어 연대를 압박하고 있다. 지난 9일 열린 3차 의견 교환 모임에선 ‘안보법제의 철폐와 입헌주의의 회복을 요구하는 시민연합’을 결성해 차기 참의원 선거에서 야당의 단일후보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상태다. 구마모토현 모델을 전국으로 확산시켜 선거에서 승리하자는 구상인 셈이다. 이에 발맞춰 정치권 내부의 교통정리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먼저 제1야당 민주당과 제2야당 유신당은 내년 정기국회부터 단일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기로 11일 합의했다. 양당은 앞으로 통합을 위한 교섭을 이어갈 전망이다. 공산당도 민주당 등이 국민연합정부 안을 받지 않더라도 참의원 선거에서 야권 단일후보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선전포고’가 날아왔다. 발신지는 아베 총리의 ‘정치적 동지’인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유신의 모임’의 전 대표였다. 그는 12일 “헌법 개정의 최대 기회가 왔다. 참의원 선거에서 (공동 여당인) 자민당-공명당과 오사카 유신의 모임이 3분의 2 의석을 차지하는 것을 목표로 최선을 다하자”고 말했다. 현재 중의원에선 공동 여당이 전체 의석(475석)의 3분의 2(317석) 이상인 326석을 확보하고 있지만, 참의원에선 133석으로 3분의 2(162석)에 못 미치고 있다. 내년 참의원 선거에서 헌법 개정 세력이 의석수를 늘려 개헌을 실현하자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이로써 내년 참의원 선거는 아베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에서 전후 70년간 일본을 만들어온 기틀인 평화헌법의 개정 문제가 달린 ‘중대 선거’로 판이 커지게 됐다.
일본의 야권 연대는 성공할까. 시금석은 내년 4월 치러지는 중의원의 홋카이도 5선거구의 보궐선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은 마치무라 노부타카 전 중의원 의장이 지난 6월 사망해 공석이 된 선거구다. 이 선거구에선 2009년 8월 민주당 후보가 자민당 후보를 3만표 차로 꺾었지만, 아베 정권이 등장한 2012년 12월 선거 땐 야권이 분열하며 자민당에 의석을 내줬다. 이 선거구에서 야권이 단일후보를 세워 성공한다면, 그 기세가 전국으로 단숨에 확산될 수 있다.(그래픽)
오카다 가쓰야 민주당 대표는 14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년 7월 참의원 선거의 1차 목표를 “‘9조 개헌 세력’이 (참의원에서)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민주당 공천 후보뿐 아니라 ‘무소속 야당 통일후보’도 적극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결과에 따라 헌법 개정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그는 “야당끼리 대립을 해선 국민의 기대에 응답할 수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거대 여당의 독주에 맞서는 일본 야권의 단일화 실험이 성공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사분오열된 한국의 상황보다는 희망적으로 보인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야권연대 ‘불씨’ 지펴
공산당 등 안보정책 눈높이 달라
‘연대’의 길 걸림돌 많지만
야권후보 단일화 땐
지난 선거 석패한 선거구 역전 가능성 아베정권 심판 ‘중간평가’ 넘어
평화헌법 운명 쥔 ‘중대선거’로 일본의 상원에 해당하는 참의원은 의원 임기가 6년으로, 3년마다 의석의 절반을 새로 뽑는다. 따라서 내년 여름엔 전체 242석 가운데 절반인 121석을 놓고 선거가 치러진다. 지역구 73석, 비례대표 48석으로 의석 배분이 정해진 상태다. 이 가운데 구마모토처럼 인구가 적은 지방 현에선 한 현에서 한명, 혹은 돗토리·시마네현처럼 두 현을 하나의 선거구로 묶어 한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1인 선거구’(32개)가 존재한다. 참의원 선거에 대비해 구마모토현의 민주당·사민당, 일본 최대 노조인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는 여성인 아베 히로미(49) 변호사를 야권 단일후보로 세우겠다는 결정을 내린 상태다. 문제는 이모 요시야(60)를 독자 후보로 공천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공산당이었다. 고심하던 공산당이 15일 결단을 내렸다. 히다카 신야 공산당 구마모토현 위원장은 이날 구마모토현청에서 민주당·유신당 등 야당들과 만나 “아베 정권 타도를 위해 선거 협력에 일치했다. 전국적으로 이런 흐름이 확산되길 바란다”며 독자 후보의 공천 취소를 약속했다. 이 열기를 이어받은 구마모토넷은 ‘야권 단일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선거대책본부를 만들어 적극적인 지원 운동에 나설 예정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코앞에 두고 적전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한국의 야권과 달리 일본의 야권은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안보법제 철폐’라는 하나의 큰 이슈 아래 급속히 결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월 충격적인 안보법 ‘날치기 통과’ 이후 야권 연대를 처음 부르짖고 나선 것은 공산당이었다. 시이 가즈오 위원장은 자민당이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킨 직후 “‘전쟁법을 폐지하고, 입헌주의를 되살린다’는 하나의 이슈에 일치하는 모든 정당·단체·개인 등이 공동으로 ‘전쟁법 폐지를 위한 국민연합정부’를 수립하길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 제안이 일본 정계에 큰 파장을 몰고 온 것은 공산당이 일본 정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독특한 위치 때문이다. 공산당은 그동안 자신들의 이념적 순수성 등을 위해 기존 정당과의 연대에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그래서 여야가 박빙의 승부를 이어갈 때도 공산당의 제3후보가 3~5%의 표를 가져가는 바람에 자민당이 손쉬운 승리를 거두는 일이 적지 않았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의 12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공산당의 정당 지지율은 5.0%로, 제1야당인 민주당(8.5%)의 지지율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공산당이 야권 후보 단일화에 합류한다면, 지난 선거에서 야당이 근소한 차이로 석패한 선거구에서 역전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민주당-공산당의 선거 협력엔 걸림돌이 적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호소노 고시 정조회장, 마에하라 세이지 전 외상 등 민주당 내 우파 의원들의 맹렬한 반발이었다. 실제로 한-일 강제병합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1841~1909)의 외고손자인 마쓰모토 다케아키 전 외상은 이 문제로 탈당까지 감행했다. 미-일 동맹을 중시하는 민주당과 미-일 동맹은 물론 자위대도 부정하는 공산당 사이엔 적지 않은 안보 정책상의 차이가 있는 게 사실이다. 미온적인 민주당을 압박하며 야권 연대의 불씨를 살린 것은 일본 시민사회였다. 그 중심엔 지난 8~9월 일본 국회 앞의 ‘안보투쟁’을 이끌었던 ‘전쟁을 허용하지 않는다, 9조를 부수지마 총결집행동 실행위원회’와 ‘실즈’(SEALDs·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 등이 있었다. 이들은 10월부터 민주당 등 5개 야당과 한달에 한번꼴로 ‘의견 교환 모임’을 열어 연대를 압박하고 있다. 지난 9일 열린 3차 의견 교환 모임에선 ‘안보법제의 철폐와 입헌주의의 회복을 요구하는 시민연합’을 결성해 차기 참의원 선거에서 야당의 단일후보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상태다. 구마모토현 모델을 전국으로 확산시켜 선거에서 승리하자는 구상인 셈이다. 이에 발맞춰 정치권 내부의 교통정리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먼저 제1야당 민주당과 제2야당 유신당은 내년 정기국회부터 단일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기로 11일 합의했다. 양당은 앞으로 통합을 위한 교섭을 이어갈 전망이다. 공산당도 민주당 등이 국민연합정부 안을 받지 않더라도 참의원 선거에서 야권 단일후보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선전포고’가 날아왔다. 발신지는 아베 총리의 ‘정치적 동지’인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유신의 모임’의 전 대표였다. 그는 12일 “헌법 개정의 최대 기회가 왔다. 참의원 선거에서 (공동 여당인) 자민당-공명당과 오사카 유신의 모임이 3분의 2 의석을 차지하는 것을 목표로 최선을 다하자”고 말했다. 현재 중의원에선 공동 여당이 전체 의석(475석)의 3분의 2(317석) 이상인 326석을 확보하고 있지만, 참의원에선 133석으로 3분의 2(162석)에 못 미치고 있다. 내년 참의원 선거에서 헌법 개정 세력이 의석수를 늘려 개헌을 실현하자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이로써 내년 참의원 선거는 아베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에서 전후 70년간 일본을 만들어온 기틀인 평화헌법의 개정 문제가 달린 ‘중대 선거’로 판이 커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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