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214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나온 어린이들이 ‘역사를 기억하자’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위안부는 성노예” 저술 요시미 교수
날조라는 발언자 상대 소송 패소
“듣는이가 날조란 평가 않았을 것”
날조라는 발언자 상대 소송 패소
“듣는이가 날조란 평가 않았을 것”
“부당 판결입니다. 변호사로서 참담합니다.”
20일 도쿄 지요다구 도쿄지방재판소 앞. ‘부당 판결’이란 펼침막 앞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일본 시민단체들의 관심을 모았던 ‘요시미 재판’의 판결 내용이 소개됐다. 재판에 참여한 막내 변호사인 무토 고키는 원고 패소 사실을 전하며 “판사의 판결을 듣고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주변을 둘러싼 100여명의 일본 시민들은 “부당한 판결을 용서하지 않겠다” “요시미 교수의 명예를 지키자”는 구호를 외쳤다.
도쿄지방재판소 33부(재판장 하라 가쓰야)는 이날 일본 내 위안부 문제 연구의 권위자인 요시미 요시아키(69) 주오대 교수가 사쿠라우치 후미키 전 일본유신회 의원을 상대로 낸 명예훼손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며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이 큰 주목을 받은 것은 현재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가장 큰 쟁점인 ‘위안부제도는 성노예제도였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일본 사법부의 판단이 내려질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갈등이 시작된 것은 2013년 5월 사쿠라우치 전 의원이 외국특파원협회 기자회견에서 ‘위안부는 성노예’라는 요시미 교수의 저술에 대해 “날조라는 것이 여러 증거에 의해 확인됐다”고 말하면서부터다. 요시미 교수는 사쿠라우치 의원에게 이 발언의 철회와 사과를 요구했지만 거부당하자, 같은 해 7월26일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요시미 교수 쪽은 애초 낙승을 예상했다. 사쿠라우치 의원이 ‘날조’라는 발언을 했으므로, 자신의 발언이 명예훼손이 아님을 입증하려면 요시미 교수가 ‘위안부가 성노예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성노예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는 점을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라 재판장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놓으며 내세운 논리는 사쿠라우치 전 의원이 ‘날조’라는 말을 했어도 듣는 사람이 이를 날조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며, 책에 대해 논평을 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본 발언(사쿠라우치 전 의원의 ‘날조’라는 발언)은 구두로 나온 짧은 코멘트다. 중립적 입장의 통역자도 이 말을 ‘오류’, ‘부적당한’이라는 정도의 의미인 인코렉트(incorrect)라고 번역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성노예 부분에 대해선 “종군위안부가 ‘성노예였는지’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렇게 평가할 수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이기에 “사실에 대해 사용되는 날조라는 말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가와카미 시로 변호사는 “위안부 제도가 성노예제인지 아닌지에 대해선 판단을 피한 매우 형식적인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요시미 교수는 판결 후 열린 보고대회에서 “판결은 매우 아쉽고 분노스러운 것이었다. 한 사람의 연구자에게 연구 결과가 ‘날조’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인격에 상처를 주는 것인지 재판부가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요시미 교수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할 예정이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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