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카 히토시 국제전략연구소 이사장. 사진 길윤형 특파원
일 고이즈미 평양선언 주역
다나카 국제전략연구소 이사장
다나카 국제전략연구소 이사장
일본 외무성의 대표적 전략가였던 다나카 히토시 국제전략연구소 이사장이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강경 대북정책을 펴고 있는 한국 정부를 향해 제재는 어디까지나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이며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북핵 해결이라는 최종 목표를 위해 유연한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조언으로 해석된다.
다나카 이사장은 지난 23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을 상대로 한 군사적인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외교적 협상을 위한 시나리오가 있어야 제재가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며 “시간을 끌지 말고 대화를 재개할 것”을 주문했다. 외무성에서 아시아대양주국장과 외무심의관(차관보급)을 지낸 그는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방북과 평양선언을 이끌어 낸 인물로 현실주의적 외교관을 갖고 있다.
“북 상대 군사적 문제해결 불가능
외교적 협상 시나리오 있어야
강력한 제재 조처가 의미 가져”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로켓 발사로 동아시아의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특히 미-중은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놓고 치열한 갈등을 벌이기도 했는데. “세계의 힘의 균형이 바뀌고 있다. 동아시아에선 중국이 남중국해 등에서 매우 공세적인 해양 정책을 펼치고 있고, 북한은 또다시 핵과 미사일 실험을 했다. 한반도 정세를 볼 때 절실히 느끼는 것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관계국들이 진심으로 정책을 조정해 마주하려는 힘이 상당히 쇠퇴해 있다는 것이다. 지금 상황이 진행된다면 북한이 점점 핵과 미사일의 능력을 키워갈 것이다. 어딘가에서 이 악순환을 멈춰야 한다. 지금의 시기는 매우 리스크가 크지만,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한·미·일은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 조처를 내놓았다. 특히 한국은 개성공단 중단이라는 초강경 카드를 빼 들었는데. “개성공단의 중단은 (북한이) 무슨 일을 해도 이것을 계속하는 것은 아니라는 한국의 의도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중요했다고 본다. 그와 함께 한국 정부가 북한의 행동에 따라선 (공단의) 원상회복도 가능하고, 확대될 수도 있다는 기본적인 자세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정부가 취하는 행동이란 최종적인 결과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 제재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래서 좀 더 긴 시각으로 개성공단을 볼 필요도 있다고 본다. 북한을 상대로 한 군사적인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외교적인 협상을 위한 시나리오가 있어야 한다. 그런 계획이 있어야만 강력한 제가 조처가 의미를 갖게 된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현 가능한 프로세스는 뭘까? “일·미·한 사이에 정책 조정을 통해 (문제해결을 위한) 분명한 계획을 만들어야 하고, 중국도 여기에 포함되어야 한다. 협상을 위한 입구(출발점)로선 ‘핵·미사일 실험의 모라토리엄(동결)’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시작해 6자회담의 2005년 9·19합의로 돌아와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플랜을 다시 한번 시행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한다. 시간을 끌지 말고, 2005년의 합의한 여러 조치를 집행해 갈 수 있는 협의에 들어가야 한다. 당시 합의가 잘 이행되지 않는 하나의 이유는 검증할 수 있는 핵의 폐기. 즉 검증 조치였다. 지금까지 일·미·한은 북한은 합의를 한 뒤에도 뒤에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한 게 아니냐, 그래서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명확한 제재 조처, 협의를 위한 전제, 그리고 해결을 위한 시간적인 요소 등 분명한 ‘액센트’(강조점)가 있는 틀 안에서 해결을 이제부터 추진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중국이다. 현재 한국 내에선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중국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에서 한반도의 사드 배치를 동시에 추진한 것은 실책이었다는 지적이 있다. “중국은 사드로 인해 자국의 안전보장 태세가 훼손될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지금처럼 핵과 미사일 능력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사드와 같은 엠디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한국의 논리는 정당하다고 본다. 물론 한국은 북한과 거리가 가까워 사드가 정말 유효한 것인지에 대한 기술적인 논의도 있을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북한의 비핵화이고, 이 논의에 중국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한반도에) 사드를 넣을 필요는 없을 수도 있다. 중국이 그렇게 (사드에 대해) 강하게 얘길 한다면, 중국은 (북한을 움직이기 위한) 지렛대가 있으니 북핵의 폐기에 역할을 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유력 정치가가 핵무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고, 이는 결과적으로 핵의 도미노 현상을 일으켜 일본과 대만에까지 핵이 확산될지 모른다는 얘기도 나온다. 중국이 자신의 지렛대를 활용해 북핵 폐기를 향해 노력한다면 한국이 핵무장이나 사드 논의를 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은 지난 2002년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방문을 이끌어낸 주역이다.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과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선언은 미 부시 행정부에 의해 좌절되는데, 현재 동아시아 정세를 보는 감회는? “아까 미국, 한국, 일본, 중국 등이 진심으로 정책 협조를 하지 않으면 문제를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좀 더 긴 프로세스에서 보면 1994년 북-미간 제네바 합의를 맺고, 케도(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를 만들었다. 부시 정권은 케도를 정말 싫어했다. 이를 만든 것은 클린턴 정권이기도 해서, 부시 정권은 북한에게 경수로를 제공하는 것에 대해 매우 네거티브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 지금도 생각나지만 당시 티콕(TCOG·대북정책 조율을 위한 한-미-일 3국간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이라는 협의 틀이 있었다. 여기서 3개국이 대북 정책 조정을 했는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미국이 이에 대해(제네바 합의에 따른 경수로의 제공)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잘못됐다’고 명확히 지적한 적이 있다. 고이즈미의 방북 때도 미국과의 조정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 북한 문제를 풀려면 (관계국들 사이에) 상당한 (국가간) 정책 조정이 없으면 안 된다. 김대중 대통령은 매우 존경할 만한 분이었지만, 당시 미국과의 정책 조정이 충분하지 않았다. 2002년 9월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때도 미국의 부시 정권은 네오콘의 영향력이 강했기 때문에 (미국과의 협의가) 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았다. 당시 (북-일이 발표한) 평양선언은 북핵과 미사일 문제를 국제적인 협의로 해결하자는 내용이었다. 이를 위해선 미국을 변화시켜야 했지만, 정말 어려웠다. 한 나라의 정부를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하나의 목적으로 결집시키는데 곤란함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지금 북한이 4차례나 핵 실험을 한 상황이 됐다. 이에 대해 미국이 나빴다, 한국이 나빴다, 일본이 나빴다라고 하기보다 관련국들 간에 강한 결속과 연계가 없었던 것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고 말하고 싶다.”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직후 미국이 고농축우라늄을 통한 핵개발 의혹을 제기하며 제네바 합의가 파기된다. 이에 대해선 북-일 국교정상화를 방해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음모론이 나오기도 했다. “음모는 아니다(웃음). 미국엔 매우 다양한 의견이 있고, 그런 여러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경쟁하며 정책을 만들어 간다. 하나의 의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도쿄/ 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외교적 협상 시나리오 있어야
강력한 제재 조처가 의미 가져”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로켓 발사로 동아시아의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특히 미-중은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놓고 치열한 갈등을 벌이기도 했는데. “세계의 힘의 균형이 바뀌고 있다. 동아시아에선 중국이 남중국해 등에서 매우 공세적인 해양 정책을 펼치고 있고, 북한은 또다시 핵과 미사일 실험을 했다. 한반도 정세를 볼 때 절실히 느끼는 것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관계국들이 진심으로 정책을 조정해 마주하려는 힘이 상당히 쇠퇴해 있다는 것이다. 지금 상황이 진행된다면 북한이 점점 핵과 미사일의 능력을 키워갈 것이다. 어딘가에서 이 악순환을 멈춰야 한다. 지금의 시기는 매우 리스크가 크지만,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한·미·일은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 조처를 내놓았다. 특히 한국은 개성공단 중단이라는 초강경 카드를 빼 들었는데. “개성공단의 중단은 (북한이) 무슨 일을 해도 이것을 계속하는 것은 아니라는 한국의 의도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중요했다고 본다. 그와 함께 한국 정부가 북한의 행동에 따라선 (공단의) 원상회복도 가능하고, 확대될 수도 있다는 기본적인 자세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정부가 취하는 행동이란 최종적인 결과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 제재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래서 좀 더 긴 시각으로 개성공단을 볼 필요도 있다고 본다. 북한을 상대로 한 군사적인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외교적인 협상을 위한 시나리오가 있어야 한다. 그런 계획이 있어야만 강력한 제가 조처가 의미를 갖게 된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현 가능한 프로세스는 뭘까? “일·미·한 사이에 정책 조정을 통해 (문제해결을 위한) 분명한 계획을 만들어야 하고, 중국도 여기에 포함되어야 한다. 협상을 위한 입구(출발점)로선 ‘핵·미사일 실험의 모라토리엄(동결)’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시작해 6자회담의 2005년 9·19합의로 돌아와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플랜을 다시 한번 시행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한다. 시간을 끌지 말고, 2005년의 합의한 여러 조치를 집행해 갈 수 있는 협의에 들어가야 한다. 당시 합의가 잘 이행되지 않는 하나의 이유는 검증할 수 있는 핵의 폐기. 즉 검증 조치였다. 지금까지 일·미·한은 북한은 합의를 한 뒤에도 뒤에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한 게 아니냐, 그래서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명확한 제재 조처, 협의를 위한 전제, 그리고 해결을 위한 시간적인 요소 등 분명한 ‘액센트’(강조점)가 있는 틀 안에서 해결을 이제부터 추진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중국이다. 현재 한국 내에선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중국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에서 한반도의 사드 배치를 동시에 추진한 것은 실책이었다는 지적이 있다. “중국은 사드로 인해 자국의 안전보장 태세가 훼손될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지금처럼 핵과 미사일 능력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사드와 같은 엠디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한국의 논리는 정당하다고 본다. 물론 한국은 북한과 거리가 가까워 사드가 정말 유효한 것인지에 대한 기술적인 논의도 있을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북한의 비핵화이고, 이 논의에 중국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한반도에) 사드를 넣을 필요는 없을 수도 있다. 중국이 그렇게 (사드에 대해) 강하게 얘길 한다면, 중국은 (북한을 움직이기 위한) 지렛대가 있으니 북핵의 폐기에 역할을 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유력 정치가가 핵무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고, 이는 결과적으로 핵의 도미노 현상을 일으켜 일본과 대만에까지 핵이 확산될지 모른다는 얘기도 나온다. 중국이 자신의 지렛대를 활용해 북핵 폐기를 향해 노력한다면 한국이 핵무장이나 사드 논의를 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은 지난 2002년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방문을 이끌어낸 주역이다.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과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선언은 미 부시 행정부에 의해 좌절되는데, 현재 동아시아 정세를 보는 감회는? “아까 미국, 한국, 일본, 중국 등이 진심으로 정책 협조를 하지 않으면 문제를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좀 더 긴 프로세스에서 보면 1994년 북-미간 제네바 합의를 맺고, 케도(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를 만들었다. 부시 정권은 케도를 정말 싫어했다. 이를 만든 것은 클린턴 정권이기도 해서, 부시 정권은 북한에게 경수로를 제공하는 것에 대해 매우 네거티브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 지금도 생각나지만 당시 티콕(TCOG·대북정책 조율을 위한 한-미-일 3국간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이라는 협의 틀이 있었다. 여기서 3개국이 대북 정책 조정을 했는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미국이 이에 대해(제네바 합의에 따른 경수로의 제공)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잘못됐다’고 명확히 지적한 적이 있다. 고이즈미의 방북 때도 미국과의 조정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 북한 문제를 풀려면 (관계국들 사이에) 상당한 (국가간) 정책 조정이 없으면 안 된다. 김대중 대통령은 매우 존경할 만한 분이었지만, 당시 미국과의 정책 조정이 충분하지 않았다. 2002년 9월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때도 미국의 부시 정권은 네오콘의 영향력이 강했기 때문에 (미국과의 협의가) 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았다. 당시 (북-일이 발표한) 평양선언은 북핵과 미사일 문제를 국제적인 협의로 해결하자는 내용이었다. 이를 위해선 미국을 변화시켜야 했지만, 정말 어려웠다. 한 나라의 정부를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하나의 목적으로 결집시키는데 곤란함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지금 북한이 4차례나 핵 실험을 한 상황이 됐다. 이에 대해 미국이 나빴다, 한국이 나빴다, 일본이 나빴다라고 하기보다 관련국들 간에 강한 결속과 연계가 없었던 것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고 말하고 싶다.”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직후 미국이 고농축우라늄을 통한 핵개발 의혹을 제기하며 제네바 합의가 파기된다. 이에 대해선 북-일 국교정상화를 방해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음모론이 나오기도 했다. “음모는 아니다(웃음). 미국엔 매우 다양한 의견이 있고, 그런 여러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경쟁하며 정책을 만들어 간다. 하나의 의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도쿄/ 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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