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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한국어 서툴지만 한-일 젊은이 교류에 기여하고파”

등록 2016-02-29 19:00수정 2016-02-29 21:55

전 ‘아사히신문’ 기자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 우에무라 다카시
[짬] 전 ‘아사히신문’ 기자 우에무라 다카시
“우에무라상, 도쿄에선 마지막 인사 하는 자리가 되네요.” 지난 28일 오후 도쿄 제이아르(JR) 요쓰야역 앞의 한 행사장. 사회자의 소개를 받고 마이크를 받아 쥔 우에무라 다카시(57)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그는 3월 새 학기부터 1년 동안 한국 부천 가톨릭대에서 초빙교수 자격으로 한국 학생들에게 ‘동아시아의 평화와 문화’를 가르칠 예정이다. 그는 “강의를 한국어로 해야 해 조금 걱정이지만, 한국의 젊은이들을 잘 가르쳐 일본의 젊은이들과 좋은 교류를 할 수 있게 만들고 싶다”며 웃었다.

이날 모임은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처음 공개한 김학순(1924~97) 할머니의 첫 증언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날조 기자’란 누명을 썼던 우에무라 기자를 지원해온 이들이 마련한 조촐한 환송 파티였다.

25년 전 위안부 피해자 첫 증언 기사
2014년부터 우익들 ‘날조 기자’ 공세
시민사회 170명 변호인단 꾸려 지원

호쿠세이대 ‘자매’ 가톨릭대 초빙교수로
3월부터 1년간 ‘동아시아 평화’ 강의
“언론인답게 위안부 문제 마주할 결심”

지난 2년여 동안 우에무라 기자는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일본 사회 내의 치열한 공방의 한가운데 있었다.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된 것은 2014년 1월 말 발매된 시사주간 <주간문춘>(2월6일 발행호)이 ‘위안부 날조 아사히신문 기자가 아가씨들이 다니는 여자대학의 교수로’라는 기사를 내놓으면서부터였다. 당시 아베 신조 정권이 한-일 외교 현안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위안부 문제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가기 위해 고노 담화(1993년)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 것이 이런 보도의 배경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로 인해 우에무라 기자는 4월 취직이 예정돼 있던 고베쇼인여대의 고용 계약이 취소되는 수난을 겪었다.

이어 그를 비상근강사(시간강사)로 고용하고 있던 홋카이도의 작은 대학인 호쿠세이학원대학을 향한 우익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학교엔 하루가 멀다 하고 “우에무라를 해고하지 않으면 대학을 폭파하겠다”는 협박장이 날아왔다. 공격은 우에무라 기자 본인을 넘어 딸에게까지 이어졌다. 우에무라 기자는 “당시 내가 쓴 위안부 기사는 2건밖에 없다. 그렇게 대단한 기사를 쓴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심한 공격이 이어질까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우에무라를 향한 우익들의 지독한 공격을 목도한 일본의 지성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 지식인들은 2014년 10월 우익들의 협박에 흔들리고 있는 호쿠세이대학을 응원하기 위해 ‘지지 마라 호쿠세이의 모임’을 결성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번 사태에 적극적인 개입에 나서게 된다. 역전의 분기점은 호쿠세이대학이 그해 12월 “대학에 대한 폭력과 협박에 굴하지 않겠다”며 우에무라의 재계약을 결정한 뒤다. 일단 급한 불을 끈 뒤 일본 시민사회가 시작한 것은 우에무라 기자에 대한 재판 지원이었다.

“어느 날 변호사 나카야마 다케토시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약속 장소인 도쿄 아키하바라역으로 나갔습니다. 그에게 ‘난 날조 기자가 아니다’라는 것을 여러 자료를 토대로 설명하자, ‘당신은 일본 민주주의의 보물’이라고 말하며 재판 지원에 나서겠다고 하더군요. 어둠 속에서 빛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우에무라는 2015년 1월 도쿄지방재판소에 자신을 ‘날조 기자’라며 집요하게 공격해온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 인사인 니시오카 쓰토무와 <주간문춘>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이 재판에는 변호사 170명이 무료 변론에 나서고 있다.

우익들의 공격이 잦아들자 우에무라가 눈을 돌린 곳은 자신이 25년 전 처음 보도했던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들의 현실이었다. 그는 지난해 8월15일 방한해 천안시 망향의 동산에 잠들어 있는 김 할머니의 묘소를 참배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그동안 위안부 문제에 거리를 둬왔지만, 그게 어리석은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앞으로 언론인으로서 위안부 문제에 진지하게 마주해 가겠다고 결심을 굳혔다”고 말했다.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우에무라는 “시련을 통해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경험이 없었으면 지금쯤 고베의 여대 교수가 되어 있겠죠. 그랬다면 ‘아사히신문은 좋은 회사다. 나는 그런 회사의 해외 특파원을 했다’고 자랑만 늘어놓는 평범한 기자 출신의 대학 선생이 됐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나를 지원해준 여러 사람들과의 사귐도 없었겠죠. 이런 고난 속에서 일본 저널리즘의 취약함과 투쟁하는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됐습니다.”

그의 새로운 도전은 이제 한국에서 이어진다. 그는 3월부터 가톨릭대에서 한국 대학생들을 가르친다. 가톨릭대는 그가 비상근강사로 일하던 호쿠세이대학과 자매대학이기도 하다.

우에무라는 “호쿠세이대학에서 가르치던 한국인 학생들 대부분이 가톨릭대의 유학생들이었다. 아이들이 ‘나를 해고하지 말라’는 서명운동에 참가하기도 했다. 좋은 대학인 것을 알고 있어서 결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2년 동안 경험한 투쟁의 기록은 지난달 26일 이와나미서점이 출간한 <진실-나는 ‘날조 기자’가 아니다>에 자세히 담겼다.

도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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