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배회하다 열차에 치여 사망
철도회사, 아들에 내용증명 보내
일 최고재판소 “가족, 책임 없다”
철도회사, 아들에 내용증명 보내
일 최고재판소 “가족, 책임 없다”
2007년 12월7일, 아이치현 오부시. 하루 일과가 끝나가던 늦은 오후 자택에 머물고 있던 91살 노인이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남편을 돌보며 소파에 앉아 있던 부인(당시 84)이 깜빡 잠이 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 아흔을 넘긴 노인은 치매를 앓고 있었다. 2005년 8월부터 자꾸만 외출하려는 ‘배회’ 증세를 보이기 시작해, 가족들은 노인을 발견하는 이들이 쉽게 연락할 수 있도록 옷과 모자에 전화번호가 담긴 이름표를 달아두고 있었다. 노인이 사라진 지 한 시간 뒤, 가족들은 제이아르(JR) 도카이도의 교와역 관계자로부터 “노인이 철도 건널목을 건너다 열차에 치어 숨졌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 노인의 아들(65)은 생각지도 못했던 내용증명 우편물을 받았다. 열차 사고로 재산상의 피해를 본 제이아르 도카이도가 가족들에게 “회사가 입은 피해 720만엔(약 75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14일 안에 배상을 하지 않으면 소송을 걸겠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치매 노인이 일으킨 사고의 배상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일본 최고재판소는 1일 가족들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1·2심 법원의 판단을 뒤집고 “가족들에게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일본 민법 714조를 보면, 책임능력이 없는 치매환자 등이 사고를 낼 경우 피해자는 ‘감독의무자’에게 손해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단, 감독의무자에게 과실이 없는 경우 면책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누가 노인의 감독의무자이며, 면책이 될 수 있는 상황은 무엇인가’에 모아져 있었다. 1·2심에선 철도회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아들과 부인의 책임을 인정했지만, 대법원은 “가족이 치매 노인을 감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며 손해배상 책임을 면해 준 것이다.
후생노동성의 자료를 보면, 현재 일본 전국의 치매노인 수는 520만명이다. 2025년엔 700만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2014년 한해 동안 치매 노인이 관계된 열차사고는 29건, 자동차 사망사고는 181건이 발생했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보험업계에선 치매 노인이 일으키는 사고에 대한 보상 대상을 넓히는 움직임도 관찰되고 있다”고 전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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