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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기술력 맹신과 무모한 투자 ‘잘못된 만남’…자기 덫에 갇힌 ‘샤프 왕국’의 몰락

등록 2016-03-03 19:50수정 2016-03-03 22:05

일본서 몰락 원인분석 다양
샤프펜슬 이어 LCD 세계평정
기술만 좇다 ‘함정’에 빠져
세계흐름 못 쫓아가
제품개발·시장 개척 게을리해
사진 EPA 연합뉴스
사진 EPA 연합뉴스

일본 제조업의 상징이었던 샤프가 몰락한 원인은 뭘까. 샤프가 지난달 말 경영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대만 전자업체 폭스콘(훙하이그룹)과 매각 협상에 돌입하면서, 이 기업의 실패 원인을 찾으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지난달 26일부터 ‘샤프의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이 회사의 실패 이유를 되돌아보는 5회 기획 시리즈를 내보냈다. 일본 서점가엔 샤프의 실패 원인을 분석하는 다양한 경영학 관련 서적들이 팔리고 있다.

일본인들에게 샤프는 독특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제조 기업으로 꼽힌다. 1912년 창업한 샤프가 지금의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1915년 ‘샤프펜슬’이라는 이름의 메카닉 펜슬(기계식 연필)을 내놓으면서부터다. 샤프는 이후 이 회사의 사명이 됐고, 지금도 기계식 연필의 대명사로 쓰인다.

샤프의 역대 사장들과 액정부문 실적 추이
샤프의 역대 사장들과 액정부문 실적 추이

샤프의 사풍은 이 회사를 창업한 하야카와 도쿠지(1893~1980)의 독특한 ‘기술론’으로 요약된다. 하야카와는 생전에 “쓸데없이 규모를 쫓지 말고, 성의와 독자의 기술을 갖고 폭넓게 세계의 문화와 복지 향상에 공헌한다”는 경영 이념을 밝힌 적이 있다. 이런 기술론을 바탕으로 샤프는 1953년 일본 최초의 흑백텔레비전, 1973년엔 세계 최초의 액정(LCD) 표시 전자계산기를 출시한다. ‘액정 샤프’라는, 깨지지 않을 것으로 보였던 전설의 시작이었다. 샤프는 이후 성장을 거듭해 2001년 세계 액정 텔레비전 시장에서 무려 79.4%의 점유율을 기록한다. 같은 기간 한국 삼성의 점유율은 1.3%에 그쳤다.

일본에선 샤프가 몰락하게 된 원인을 기술에 대한 맹신과 무모한 투자 등 두 가지를 꼽는다.

샤프의 기술 맹신을 잘 보여주는 단어는 ‘블랙박스’다. 샤프는 자신들의 뛰어난 기술력을 과신한 나머지 세계의 시장 흐름을 읽고 이에 맞춘 제품 개발과 시장 개척을 게을리했다. 샤프라는 외부에선 들여다 볼 수 없는 블랙박스 안에서 액정 생산부터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 등 최종 제품을 생산하는 ‘수직통합’ 모델을 완성한 것이다. 이런 경영전략은 2000년대 초반엔 큰 성과를 거둬, 미에현 가메야마 공장에서 생산된 아쿠오스(AQUOS) 모델은 전 세계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 북미 시장의 주문이 쏟아지다 보니 1대당 운송료를 6만엔(63만원)이나 주고 45인치짜리 대형 텔레비전을 비행기에 실어 보내는 일도 있었다.

2000년대 말로 접어들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세계 제조업의 흐름이 세계 각지에서 값싼 부품을 사들여 범용 상품을 생산하는 ‘수평통합’ 모델로 진화한 것이다. 그와 함께 한국과 중국 업체들의 대약진이 시작됐다. 2006년 14.6만엔이었던 액정 텔레비전 한대의 평균값이 2012년 8월 4.9만엔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샤프는 과거의 성공에 취해 2007년 오사카 사카이에 4300억엔을 쏟아 부어 60인치짜리 고급 모델을 생산하는 대형 공장을 신설한다. 곧바로 터진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샤프의 실적은 급전직하했다. 그 후로도 크고 작은 경영 실수를 거듭해, 2012년엔 액정 부문에서만 1389억엔(1조4789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영업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샤프 ‘액정 패전’의 교훈>이란 저서를 쓴 다나카 유키히코 리츠메이칸아시아태평양대학 교수는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좋은 제품을 만들면 팔린다는 기술 신앙에 빠져 있었던 일본은 세계에서 고립됐다. 이는 샤프뿐 아니라 일본의 다른 전자산업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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