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후쿠시마현 아이즈미사토의 한 가설주택에서 나라하마치 출신 피난 주민들이 헝겊 짚신을 만들고 있다.
현장 l 후쿠시마 피난민들
3·11 참사 나던 해 12월부터
‘누노조리’ 배워 만들기 시작
전국으로 팔려…외국서 주문도
고된 피난생활 견딜 용기 얻어
3·11 참사 나던 해 12월부터
‘누노조리’ 배워 만들기 시작
전국으로 팔려…외국서 주문도
고된 피난생활 견딜 용기 얻어
“까르르르르~!”
지난달 26일 일본 후쿠시마현 아이즈미사토의 한 가설주택 단지. 오랜 피난 생활에 모두가 신경이 날카로워졌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노인들 사이에선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이들이 만드는 것은 후쿠시마현 아이즈 지방의 전통 짚신 제작 공법을 응용한 ‘누노조리’(헝겊 짚신). 짚신을 짜는데 필요한 색동 헝겊을 자르던 도다 유키오 노인(91)은 기자를 돌아보며 “몇살인지 맞춰 보라”며 씽긋 웃었다.
이들이 짚신 만들기 작업을 시작한 것은 3·11 원전 사고가 나던 해인 2011년 12월부터다. 참사 탓에 이곳 가설주택에 정착한 나라하마치 주민들과 이들을 손님으로 맞이한 아이즈 주민들이 교류 모임을 하다가 피난민들이 ‘헝겊 짚신’에 관심을 가지자 짚신 만들기 수업이 시작됐다. 주민 8명은 ‘와라지구미’(짚신조)라는 모임도 꾸렸다.
피난민들에게 짚신 만들기는 무슨 의미일까. 재봉틀을 돌리며 헝겊을 꿰매던 기무라 교코(68)는 “이 일을 하고 있으면 하루가 금방 간다. 뭔가를 만든다는 일은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피난민들을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은 자신들이 속해 있던 지역 공동체가 해체돼 뿔뿔이 흩어졌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고령의 피난민들이 가설주택 등에서 혼자 숨진 채 발견되는 ‘고독사’가 점점 늘고 있다.
이에 견줘 이곳 노인들은 얼핏 사소해 보이는 짚신 만들기란 공동 활동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맺고 고된 피난 생활을 견딜 수 있는 용기를 얻고 있었다. 도다 노인은 2011년 8월 가설주택에서 부인을 떠나 보내는 슬픔을 겪었지만, 짚신 만들기로 이웃들과의 교류하면서 어려운 시기를 무사히 넘겼다. 가설주택의 주민대표인 와타나베 도시마사(48)는 “주민들이 함께 모여 뭔가를 한다는 게 의미가 있다. 일을 마치고 저녁에 술 한잔 하는 게 모두에게 기쁜 일과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만든 짚신은 나라하 주민들이 만든 제품이라는 뜻인 ‘나라하토(narahato)’라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생협인 ‘팔시스템’이 색동 짚신을 일괄 매수해 전국에 판매한다. 지난해엔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마르니’가 신발을 제작해 달라고 해 150켤레를 납품하기도 했다. 아이즈미사토(후쿠시마현)
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헝겊 짚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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