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11 후쿠시마 원전 참사 이후 일본에선 탈핵을 향한 다양한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후쿠시마현 아이즈 지역을 거점으로 만들어진 전력회사인 ‘아이즈전력’이 발족한 것도 이런 흐름이 본격화되던 2013년 8월이었다.
이 회사의 사토 야우에몬(65) 사장은 “원전 사고가 터진 뒤 모두 ‘국가가 나쁘다, 전력회사가 나쁘다’고 말했지만 결국 책임은 발전소를 만들도록 허용한 우리에게도 있다”며 “아이즈의 풍부한 자연을 활용해 태양광, 수력, 풍력, 바이오매스 등 다양한 재생가능에너지를 만들어 우리 미래를 우리 손으로 바꿔가자는 생각에 전력회사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2011년 사고 원전 서쪽 100km 지역
“위험 대신 자연에너지 물려주자”
시민펀드 출자금 모아 전력회사 설립
태양광·수력·풍력·바이오매스·지열
5가지 재생가능 에너지 개발 ‘기금’도
“원전 안전은 거짓말…한국도 서둘러야”
일본에서도 후쿠시마의 ‘새로운 도전’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아이즈전력의 상징 문양은 꽉 움켜쥔 주먹이다. 흥미로운 것은 주먹을 구성하는 다섯 개의 손가락이 각각 다른 색깔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엄지손가락은 녹색이죠? (식물인) 바이오매스로 만든 에너지를 뜻합니다. 빨간색은 아이즈의 구릉에 설치한 태양광 패널에서 만든 태양광 에너지, 하늘색은 풍차로 만든 풍력 에너지입니다. 그리고 황토색은 지열 에너지, 녹색은 깨끗한 지역의 수력으로 만든 전기입니다.”
사토가 전력회사 설립이라는 ‘무모한 도전’에 나선 것은 고향에 대한 무한한 애정 때문이었다. 후쿠시마현은 크게 세 개의 큰 지역으로 나뉜다. 첫째는 후쿠시마 제1·2원전이 입지해 있는 해안부의 하마도리, 둘째는 후쿠시마시 등 현의 중심 도시들이 자리한 나카도리, 그리고 반다이산 등 도호쿠를 대표하는 명산으로 둘러싸인 내륙의 분지인 아이즈다.
“아이즈는 사계절이 뚜렷합니다. 예전부터 쌀과 보리 등의 곡물이 유명했습니다. 분지니까 깨끗한 물이 모여 아가노강을 형성해 니가타현을 지나 일본해로 흐르죠. 예전에 할아버지께서 아이즈는 뭐든 풍부하니까 ‘다른 지역으로 뭘 얻으러 나갈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뭐든 윤택하고 넉넉한 지역입니다.”
쌀과 물이 유명한 지역답게 아이즈는 일본에서도 유명한 ‘사케’(일본주)의 산지다. 사토의 가문은 아이즈에서 226년 동안 술을 만들어온 야마토가와양조장(사카구라)을 운영하는 지역의 오랜 유지이기도 하다.
그는 “이런 좋은 땅을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원전 사고가 터졌다”고 3·11 참사 당시를 회상했다. 아이즈는 원전이 입지한 하마도리에서 서쪽으로 100㎞나 떨어진 덕에 심각한 방사능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그러나 “만약 원전 사고로 고향이 오염되면 어떻게 될까, 모두 공포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결국, 원전이라는 ‘죽음의 에너지’에서 벗어나 에너지 자급자족을 결심한 이들이 뭉쳤다. 사토는 애초 생협처럼 회사를 협동조합 형태로 만들려 했지만 은행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어 주식회사 형태를 갖춰야 했다. 이후 회사는 2014년 더 많은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아이즈 솔라(solar) 시민펀드 2014’를 만들어 일본 전국에서 9980만엔(약 10억6천만원)의 출자금을 끌어모았다. 이 돈을 활용해 아이즈전력은 아이즈 각지에 50㎾급의 주민 밀착형 소형 태양광 발전소를 만들고 있다.
아이즈전력이 2월 현재 운영하는 태양광 발전소는 모두 48곳이다. 발전설비 규모를 다 합쳐도 4200㎾로 1200~1500가구에 공급할 만한 전력량에 불과하다. 게다가 태양광 발전은 평균 가동률이 13%밖에 안 돼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멀다.
물론 그간 겪은 시행착오도 적지 않다. 아이즈는 일본에서도 눈이 많이 오는 ‘유키구니’(설국)인 탓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데 적지 않은 고민을 해야 했다. 여러 차례 실험 끝에 도달한 결론은 ‘2.5m, 30도’ 원칙이었다. 눈이 쌓여도 태양광 패널까지 차오르지 않게 시설의 높이를 2.5m 이상으로 짓고, 눈이 미끄러져 떨어지면서도 발전 효율이 유지되도록 패널의 각도를 30도로 정한 것이다. 지난달 8일 제이아르(JR) 기타카타역 뒤편에 설치된 소형 발전소를 안내한 아이즈전력 직원 고바야시 게이코는 “이곳은 지역 밀착형 소형 발전소이기 때문에 비상사태 때 주민들이 전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패널 아래 전기 플러그를 설치해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과제는 현재 태양광에 치중돼 있는 설비를 다른 재생가능에너지로 분산하는 것이다. 사토는 “아이즈엔 산과 강이 많고, 화산도 있어 바이오매스, 소형 수력, 풍력, 지열 등 다양한 재생가능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재생가능에너지 사업을 시작하려는 이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9일엔 ‘후쿠시마 자연에너지기금’도 발족시킬 예정이다.
“원전이 안전하니, 안심하고 살 수 있다는 것은 다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애초에 왜 후쿠시마에 원전을 지었을까요. ‘당신들 가난하잖아. 지역 사회에 돈을 뿌릴 테니까 참고 있으라’는 얘깁니다. 실제로 주민들이나 지자체는 ‘원전은 무섭지만 돈이 된다’며 이를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바다에 면해 있는 가난한 곳에 원전을 짓죠. 한국도 재생가능에너지 사업을 서둘러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갈 곳 없는 핵 쓰레기가 쌓여갈 뿐이지요.”
기타카타(후쿠시마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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