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나카하라구 평화공원에 모인 헤이트 스피치를 반대하는 일본 시민 수백명이 도로 건너편에 있는 일본 우익들을 상대로 “혐오집회를 그만두라”고 외치고 있다. ‘함께 살아요’라고 쓴 대형 현수막과 ‘헤이트 스피치를 용납하지 않는다’라고 쓰인 피켓들이 보인다. 일본 우익들의 헤이트 스피치 집회는 20여분만에 중단됐다.
금지법 이후 우익 첫 집회 시도
공원 불허하자 도로사용 허가받아
시민·동포 1000여명 “함께 살아요”
맞불 집회로 20분만에 행진 저지
공원 불허하자 도로사용 허가받아
시민·동포 1000여명 “함께 살아요”
맞불 집회로 20분만에 행진 저지
“헤이트 스피치는 위법!” “헤이트 스피치는 범죄!”
도쿄를 출발할 무렵 드문드문 내리던 빗방울은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로 이동하는 사이 뚝 그쳤다. 5일 오전 10시, 구름이 잔뜩 내려앉은 가와사키 나카라하구 평화공원엔 “헤이트 스피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피켓을 든 시민 1000여명이 모여 있었다. 예고된 ‘일본을 정화하는 데모’라는 이름의 ‘헤이트 스피치’(인종혐오 집회)를 취재하러 왔더니, 모인 이들은 혐한 구호를 외치는 일본 우익들이 아니라 이들을 저지 하기 위해 수도권 각지에서 모여든 일본 시민들이었다. 지난달 24일 ‘헤이트 스피치 방지법’이 제정된 탓인지 시민들의 구호는 “헤이트 스피치를 멈춰라”에서 “헤이트 스피치는 범죄”로 바뀌어 있었다.
헤이트 스피치 방지법은 인종혐오 집회를 근절할 수 있을까. 일본 사회의 시선은 법이 제정된 뒤 처음으로 집회가 예고된 가와사키의 작은 공원에 집중됐다.
최근 며칠 동안 가와사키시 등 일본의 행정기관과 우익 단체는 숨바꼭질을 계속했다. 일본 우익단체가 헤이트 스치피를 연다며 시내 공원 사용허가를 신청하자 가와사키시는 지난달 30일 이를 거부했다. 가와사키 지방재판소도 2일 재일동포들이 몰려 사는 가와사키구 사쿠라모토지구 인근에서 집회를 열지 못하게 해달라는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우익 단체는 장소를 나카하라구로 옮겨 결국 경찰로부터 도로 사용 허가를 얻어낸 것이다.
공원에 임시로 만들어진 연설대로 그동안 헤이트 스피치 저지 운동에 적극 참여해 온 재일동포 3세 최강이자(42)씨의 아들 네오(13)군이 올라섰다. 일본 시민들이 따뜻한 함성으로 맞았다. 그는 “헤이트 스피치를 근절하기 위해 저 사람들도 자신의 마음 속에서 ‘헤이트 스피치는 역시 잘못이구나’라고 생각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의 손엔 “함께 살아요, 함께 행복히, 함께 안녕히”라고 쓰인 피켓이 들려 있었다.
집회 시작 시각인 오전 11시가 다가오자 헤이트 스피치 참가자들이 한두명씩 모습을 드러냈다. “꺼져라!” “너희 같은 인종 차별주의자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라!” 일본 시민들이 성난 함성으로 이들에게 몰려가 고함을 질렀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오카 요시노리(43)는 “함께, 共に(토모니·일본어로 ‘함께’라는 뜻) 말해요 ‘노 헤이트 스피치’”란 피켓을 들고 있었다. 한글, 일본어, 영어가 섞였다. 그에게 한글을 쓴 이유를 묻자 “자이니치(재일동포) 친구가 알려준 글”이라며 웃었다. 그는 이바라키현에 있는 직장에서 아침 7시까지 철야 근무를 한 뒤 기차를 타고 와 이날 집회에 참가했다. 오카는 “여기에 모인 우리뿐만 아니라 길을 지나는 시민들까지 함께 헤이트 스피치에 반대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피켓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헤이트 스피치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기세에 눌린 헤이트 스피치 참가자 10여명은 공원 맞은편에 있는 기즈키파출소 옆에 갇혀 경찰의 보호를 받아야 했다. 이들은 11시10분께부터 예정대로 행진을 시도했지만, 반대하는 시민들이 차도를 점거하자 20여분 뒤 “집회 포기”를 선언했다. 파출소 앞에서 애초 예정된 행진 코스를 채 20m도 나가지 못한 상황이었다. 누군가 “시민들의 승리”라고 외치며 환호했다. 어느 새 구름이 조금씩 걷혀 드문드문 파란 하늘이 드러나 있었다.
집회 현장에서 만난 <거리로 나온 넷우익>의 저자 야스다 고이치는 “이렇게 인종 차별 집회를 저지하는 게 올바른 사회의 모습이다. 헤이트 스피치를 하려는 이들은 애국자들이 아니고 지역사회의 분열을 꾀하고, 지역사회를 부수려는 자들”이라고 말했다.
가와사키/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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