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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아베 총리는 개헌할 수 있는 참의원 3분의 2를 손에 넣을까

등록 2016-07-06 15:11수정 2016-07-06 20:23

일본 개헌 열쇠 쥔 참의원 선거 10일 치러져
개헌세력의 3분의2 의석 획득 가능 전망도
야권에선 ‘1인 선거구’에서 막판 역전 꾀하는 중
4일 도쿄 도시마구 이케부쿠로역 앞에서 진행된 일본공산당의 참의원 선거유세 현장을 찾은 시민들이 “아베 정권을 용납하지 않겠다” 등의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4일 도쿄 도시마구 이케부쿠로역 앞에서 진행된 일본공산당의 참의원 선거유세 현장을 찾은 시민들이 “아베 정권을 용납하지 않겠다” 등의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아베 총리 퇴진!”

“아베노믹스에 또 속지 않는다!”

4일 오후 6시, 일본 도쿄의 대표적인 서민 거리인 도시마구 이케부쿠로역 히가시구치(동쪽 출구) 앞은 묘한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이케부쿠로의 명물인 세이부백화점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오자 역 앞을 남북으로 지나는 메이지로 주변에 운집한 엄청난 인파가 눈에 띄였다. 지난해 9월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가능케 하는 안보법제 저지 운동을 이끌었던 ‘실즈’(SEALDs·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의 ‘투톱’인 오쿠다 아키(24)와 스와하라 다케시(24) 등이 일본공산당을 응원하기 위해 유세에 나섰다.

일본의 답답한 정치 현실을 바꾸기 위해 떨쳐 일어선 청년 세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된 오쿠다가 처음 입에 올린 말은 안보법제 철폐와 일본 입헌주의 회복을 위해 후보 단일화를 이뤄낸 민진당과 일본공산당 등 야 4당의 ‘야권 연대’의 소중함이었다. 그는 “야권이 연대를 실현해 힘을 합치고 있는 만큼 이번 선거에선 꼭 승리를 거둬야 한다. 나 같은 아무 것도 아닌 학생도 이렇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외쳤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시이 가즈오 공산당 위원장이 아베노믹스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자, 청중 속에선 “소오다!”(그렇다), “시이상, 간바레”(시이씨, 최선을 다해주세요)라는 함성이 이어졌다.

10일 치러지는 일본 참의원 선거는 전후 일본 민주주의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선거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선거에서 아베 총리가 이끄는 개헌 세력이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차지할 경우 2차 대전에서 패전한 뒤 일본이 소중하게 지켜 온 평화헌법은 개헌 위협에 노출되게 된다. 자민당은 이미 2012년 군대 보유와 교전권을 부정한 평화헌법의 핵심인 9조를 개정해 “국방군을 갖는다”는 개헌안을 공개한 바 있다. 이런 방식으로 개헌이 이뤄지면 일본은 전후 71년 만에 본격적으로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거듭 나 해외의 무력 분쟁에 본격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된다. 외조부였던 에이(A)급 전범 용의자 기시 노부스케(1896~1987) 전 총리의 개헌에 대한 염원을 계승하고 있는 아베 총리는 일찌감치 1월 연두 기자회견에서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을 호소하겠다”고 말했고, 3월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선 “헌법 개정을 임기 중에 이뤄내고 싶다”고 거듭 강조한 바 있다.

4일 도쿄 이케부쿠로역 앞에서 진행된 일본공산당의 유세현장. 지난해 9월 안보법제 반대 운동을 주도한 ‘실즈’(SEALDs.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의 오쿠다 아키(24) 등이 연사로 나섰다.
4일 도쿄 이케부쿠로역 앞에서 진행된 일본공산당의 유세현장. 지난해 9월 안보법제 반대 운동을 주도한 ‘실즈’(SEALDs.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의 오쿠다 아키(24) 등이 연사로 나섰다.

이날 유세 현장의 분위기만 놓고 보자면, 일본 민심은 아베 정권 심판 쪽으로 기운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지난달 22일 본격 선거운동이 시작된 직후 이뤄진 일본 언론들의 여론조사 결과 자민당, 공명당, ‘오사카 유신의 모임’,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생각하는 당’ 등 개헌 세력으로 불리는 4개 정당의 의석수가 “전체 참의원 의석의 3분의 2에 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선거전이 종반으로 접어든 6일 조사에서도 이 같은 흐름은 변하지 않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6일치에서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이 49~65석, 공명당이 10~15석, 오사카 유신의 모임이 4~8석 등을 확보해 자민당이 참의원에서도 단독 과반수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 개헌 세력이 참의원에서 3분의 2 이상의 의석에 “육박해 있는 정세”라고 전했다. 모두가 ‘설마, 설마’ 해 오던 아베 총리에 의한 개헌이 현실화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 눈앞에 놓인 셈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이날 집회 현장에서 만난 사이토 마리코(41)는 “투표율이 낮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버블이 터지고 ‘잃어버린 10년’에 빠졌을 무렵인 1990년대 후반 대학을 졸업했다. 사이토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일본에서 태어나서 좋았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비정규직 노동이 늘고, 경제 전체가 국민을 위하지 않는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이어진 언론·정치·재계의 틀 안에서 정보가 제대로 국민들에게 전해지지 않는 압도적인 현실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다른 50대 여성도 “일본의 가장 큰 문제는 이번 선거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 일본의 대형 언론이다. 이번 선거는 일본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선거이지만, 대형 언론들이 이를 다루지 않는다. 많은 시민들이 거리에 나서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주고 받는 의견들이 사회 여론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실제 오카다 가쓰야 민진당 대표는 “이번 선거엔 투표일을 앞둔 2주 동안 텔레비전 토론 일정이 전혀 없다”고 일본 언론계를 향해 강한 불만을 쏟아낸 바 있다.

현재 일본에선 △아베노믹스 △안보정책 △원전 재가동 등 아베 정권이 추진해 온 개별 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이 정권 심판으론 연결되지 않는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아베 총리가 성과를 강조하는 간판 정책인 아베노믹스의 경우, 서민 경제의 관점에서 볼 때 정책 실패가 어느 정도 확인된 상태다. 엔저를 통해 수출 비중이 높은 대기업을 우선시한 탓에 일본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은 5년째 하락 중이고, 그로 인해 일본 경제의 60%를 점하는 민간소비는 2014년과 2015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또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2014년 10월 국민연금의 주식 투자비율을 24%에서 50%로 늘리면서, 일본인들의 노후 생활을 책임져야 할 소중한 연금이 2015년(2015년 4월~2016년 3월) 5조엔, 2016년 4~6월 추가로 5조엔의 손실을 기록했다. 그로 인해 “일본은 아베노믹스 불황에 빠져 있다”(시이 가즈오 공산당 위원장)는 주장까지 나오지만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40% 후반~50% 초반이 유지되는 중이다.

아베 정권에 대한 지지를 일본인들이 느끼는 안보 위협과 연결해 설명하는 견해도 있다. 모리히로 야스히라 아시아기자클럽 사무국장은 “일본인들의 절반은 정치에 무관심하고, 나머지 절반의 반 정도가 아베 총리를 지지한다. 결국 아베 총리에 대한 지지는 사회 전체의 4분의 1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표가 결집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과 북한의 위협이 점점 커지는 상황이 아베 총리가 내세우는 안보 우선론과 연결되고, 이것이 일본의 내셔널리즘(국가주의)을 강화하며 아베 정권에 대한 지지세가 강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 시민단체에 근무하고 있는 나카야마 유리(31)는 “많은 이들이 정치가 자신의 생활과 직접 연결된다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정당의 주장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번 선거가 개헌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번 선거의 승패는 전국 32개 ‘1인 선거구’의 향방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일본 참의원 선거는 중선거구제이지만, 인구가 적은 일부 현에선 한 선거구에서 한명의 후보를 선출하는 1인 선거구가 발생한다. 야권은 2010년 참의원 선거에선 1인 선거구에서 21승8패로 대승을 거뒀지만, 2013년 선거에선 2승29패라는 비참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현재 민진당·공산당·생활당·사회당 등 4개 야당은 1인 선거구에서 후보 단일화에 성공해 아베 정권과 1대 1 구도를 만드는 데까진 성공했다.

여야 수뇌부들은 치열한 접전이 이어지고 있는 1인 선거구를 중심으로 마지막 선거운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아베 총리는 6월30일엔 오카다 가쓰야 민진당 대표의 고향으로 가 오카다가 “이곳에서 지면 대표직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한 미에현, 1일엔 에히메현, 7월3일엔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를 배출해 사민당의 당세가 강한 오이타현 등을 집중 공략했다. 이에 맞서 야 4당에선 그나마 승리를 기대할 수 있는 도호쿠, 규슈 지역과 야마나시·나가노·시가·미에 등 접전구를 중심으로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오카다 대표는 6일 도쿄 전역을 돌며 “아베 총리는 선거에서 개헌 문제가 쟁점화되는 것을 피하고 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개헌을 추진할 것이다. 우린 일본 헌법의 정신을 지키고 전수방위에 충실해야 한다”고 절박하게 외쳤다.

도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4일 도쿄 도시마구 이케부쿠로역 앞에서 진행된 일본공산당의 선거 유세 현장.
4일 도쿄 도시마구 이케부쿠로역 앞에서 진행된 일본공산당의 선거 유세 현장.

4일 도쿄 도시마구 이케부쿠로역 앞에서 진행된 일본공산당의 선거 유세 현장.
4일 도쿄 도시마구 이케부쿠로역 앞에서 진행된 일본공산당의 선거 유세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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