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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일본 평화헌법 무너질 위기…‘전쟁 가능한 일본’ 치닫나

등록 2016-07-10 23:10수정 2016-07-10 23:10

집단적 자위권 행사 길튼 아베
군대 보유, 개전권 인정 않는
헌법 9조가 마지막 눈엣가시
개헌 땐 모든 족쇄서 풀려나

“총리는 재임 중에 헌법 개정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나.”(오쓰카 고헤이 민주당 의원)

“자민당은 올해로 창당 61주년이 되는데 창당 때부터 당시(黨是)로서 헌법 개정을 선언해 왔다. 나는 당연, 자민당의 총재로 지난 선거 때도 이를 주장해 왔기 때문에 목표로 하겠다는 생각이다.”(아베 신조 일본 총리)

“다시 한번 묻겠다. 재임 중에 헌법 개정을 실행하겠다는 생각이냐?”

“헌법 개정은 중의원, 참의원 각각에서 3분의 2의 다수를 얻지 않으면 발의할 수 없다. 자민당 혼자서 각각 3분의 2를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자민당뿐 아니라 여당(공명당을 지칭), 그리고 다른 정당 분들의 협력을 얻지 않으면 어렵다고 본다. 나는 재임 중에 실행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상황(중·참의원 각각에서 3분의 2 이상의 의석 확보)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본다.”

아베 정권이 10일 치러진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대승을 거둬 패전 71년 만에 일본의 군대 보유와 교전권을 부인한 ‘평화헌법’을 개정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날 선거 직후 발표된 <엔에이치케이>(NHK)의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자민당, 공명당, 오사카 유신의 모임,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는 당 등 이른바 ‘개헌 세력’이 이번에 선거가 이뤄진 121석 가운데 75~85석(78석 이상 획득하면 3분의 2)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돼 참의원 전체 의석(242명) 가운데 3분의 2(162석) 이상의 확보가 가능해졌다. 자민당-공명당 등 연립여당은 2014년 12월 중의원 선거에서 이미 3분의 2 의석을 확보해 일본 헌법이 시행된 1947년 5월3일 이후 처음으로 개헌 세력이 중·참의원 모두에서 헌법 개정안 발의 정족수를 채우게 됐다. 이로써 일본의 패전 이후 지난 71년 동안 동아시아 질서와 안정 유지에 큰 기여를 해 온 일본 평화헌법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이 됐다.

개헌에 대한 아베 총리의 의지는 얼마나 될까. 아베 총리는 지난 3월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이뤄진 오쓰카 고헤이 민주당(현 민진당) 의원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개헌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밝힌 바 있다. 아베 총리는 당시 2018년 9월로 예정된 자신의 총리 임기 안에 개헌을 “실행하고 싶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면서, 이를 실제로 추진할 수 있을지는 자민당을 포함한 개헌 세력이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는 현실론적 인식을 밝힌 바 있다. 10일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대승하면서 당시 아베 총리가 언급했던 개헌 세력의 3분의 2 의석 확보라는 필요충분조건이 충족되는 상황이 됐다.

아베 총리는 왜 개헌을 추진하는 것일까. 크게 두 가지 맥락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첫째는 아베 총리로 대표되는 일본 보수 세력이 오랫동안 꿈꿔온 ‘전후의 탈각’이다. 일본 자민당은 요시다 시게루 총리(재임 기간 1948년 10월~1954년 12월)로 대표되는 ‘실리 노선’과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총리(1957년 2월~1960년 7월)가 대변해온 ‘자주 노선’ 사이의 갈등 속에서 발전해 왔다. 요시다 총리는 큰돈이 드는 ‘안보’는 미국에 맡기고 일본은 경무장에 만족하며 경제 부흥에 집중한다는 ‘요시다 독트린’을 내세워 전후 부흥의 주춧돌을 놓았다.

이에 맞선 세력은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로 대표되는 이들이다. 그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도조 히데키 내각(1941년 10월~1944년 7월)의 각료(상공대신)로 전시 통제경제를 기획했고, 패전 뒤 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돼 스가모 형무소에 수감되는 치욕을 겪었다. 기시 전 총리는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해 ‘틀리지 않은 전쟁’이었다고 생각했고, 미국의 점령정책의 핵심 산물이었던 평화헌법에 대해 “일본인의 손으로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현행 헌법에 대한 아베 총리의 속내를 보여주는 내용이 2006년 1차 집권에 성공할 무렵 나온 자서전 <아름다운 나라에>에 나온다. 그는 현행 일본 헌법에 대해 “연합군의 최초의 의도는 일본이 두번 다시 열강으로 대두하지 못하도록 그 손발을 묶는 것이었다”는 인식을 보였고, 개헌을 “독립 회복의 상징이며 구체적인 수단”이라고 언급했다. 개헌을 통해 지난 패전의 콤플렉스를 벗어던지고, 미-일 동맹을 영-일 동맹과 같이 대등한 동맹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맥락은 ‘안보 실리론’이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안보법제를 정비하면서, 이를 통해 “억지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거듭 주장해 왔다. 미국의 상대적인 국력 약화와 중국의 부상이라는 국제 질서의 거대한 지각 변동 앞에서 아베 정권은 1단계로 지난해 4월 미-일 안보협력지침을 개정해 미-일 동맹을 이전의 지역 동맹에서 ‘글로벌 동맹’으로 위상과 역할을 확대·격상시켰다. 이를 통해 미-일 동맹은 한반도~일본열도~대만해협에 한정된 지역에서 전 세계를 무대로 미국의 전쟁 수행을 후방지원이라는 형태로 도울 수 있게 됐다.

2014~2015년 ‘입헌주의 파괴’라는 엄청난 반발을 무릅쓰며 안보법제를 제·개정했지만, 이를 통해 구체적으로 자위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불투명하고 모호한 것이 현실이다.

한반도와 관련해서도 △미사일방어(MD) △한반도 전쟁 시 주한미군에 대한 후방지원을 위한 한반도 상륙 가능성 △북한이 미사일 발사 조짐을 보일 때의 적기지 공격론 등의 자위대의 역할 확대론이 불거졌지만, 여전히 자위대가 이전과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게 됐는지에 대한 공통된 이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육해공군과 그 밖의 전력은 갖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헌법 9조의 평화 조항을 그대로 둔 채 ‘일본이 공격받지 않았는데도 타국을 위해 무력을 행사하는’ 집단적 자위권을 발동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이 미국 등을 위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해선 2단계로 개헌을 시행해 헌법 9조의 제약을 없애야 할 군사적·현실적 필요성이 생긴 셈이다.

개헌이 이뤄지면 일본을 옥죄어온 이 같은 제약들이 한꺼번에 해소된다. 참고가 되는 것은 자민당이 2012년 4월에 내놓은 헌법 개정안 초안이다. 이를 보면, 기존 헌법 9조는 사실상 해체돼 “일본은 자위권을 발동할 수 있다. 일본의 평화와 독립을 확보하기 위해 총리를 최고지휘관으로 하는 국방군을 갖는다”는 규정이 생기고, 국방군은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 및 공공의 질서를 유지하고 국민의 생명 혹은 자유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구절도 생겨난다. 나카타니 겐 방위상은 개정안에 담긴 자위권엔 “개별적 자위권뿐 아니라 집단적 자위권도 포함돼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즉, 개헌이 이뤄지면 일본은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명분으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해 전 세계의 무력분쟁에 관여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그리고 현재 국제 정세를 살펴볼 때 그 첫 시험대는 남중국해와 한반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개헌과 그에 따른 군사적 역할의 질적·양적 확대는 한국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끼치게 된다. 한국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을 통해 한-중 관계의 상당 부분을 포기하고, ‘강화된’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편입되는 길을 택했다. 한국은 앞으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게 된 일본이라는 동아시아 ‘준패권국’의 유사동맹으로 중국·북한을 견제하는 최일선에 내몰리게 될 전망이다. 당연히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등 한-일 군사협정 체결에 대한 압박이 강화되고, 동중국해·남중국해 등에서 진행되는 일본 국방군의 중국 견제를 군사적으로 지원하도록 여러 요구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국익의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한국 자신이다.

지난 8일 일본 총리관저의 정례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한국이 놓이게 될 엄혹한 현실을 엿보게 하는 흥미로운 문답이 오갔다.

-오늘(8일) 미·한 양국 정부가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기로 했는데.(일본 기자)

“미-한 간의 협력이 강화되는 것은 지역의 안정에 기여하는 것으로 우리는 이 결정을 지지한다.”(하기우다 고이치 일본 관방부장관)

-중국의 반발이 예상되는데.

“미·한이 배치를 결정했다. 제3자(중국)의 반응에 대해 일본이 코멘트할 것은 없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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