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한일협상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박근혜 대통령은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평화비) 이전과 관련해 어떤 약속을 한 것일까?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26일 일본 정부가 지난 12·28합의에 따라 한국 정부가 설치하는 재단에 “(이르면 다음달 10억엔을 출연하겠다는 방침을 굳혔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일본 정부가 10억엔의 조기 출연 방침을 굳힌 이유에 대해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지난 15~16일 몽골에서 열린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때 박근혜 대통령이 아베 총리에게 ‘합의를 책임을 갖고 이행해 가겠다’는 생각”을 밝혔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이달 초 이번 아셈 회의 때 아베 총리가 박 대통령을 직접 만나 소녀상 이전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한번 확인받고 싶다는 의향을 자국 언론을 통해 흘려왔다. 이에 대해 한국 외교부는 “일본 쪽은 정상회담을 바라는 것 같지만 우리는 아직 아니라고 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한-일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 관계자는 <엔에이치케이>의 이날 보도에 대해선 “아셈 만찬 때 박 대통령이 아베 총리 옆자리에 앉아 대화를 했다”며 사실상 시인했다. 박 대통령이 12·28 합의 이행이 필요하다는 일반론적인 언급을 했는지, 소녀상 이전 문제까지 언급했는지 등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아베 총리가 박 대통령과의 비공식 접촉을 통해 12·28 합의 이행 또는 소녀상 이전과 관련해 어느 정도 납득을 하게 되면서, 일본 정부가 10억엔을 조기 출연하기로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다음달 일본 정부가 재단에 10억엔을 출연하고 나면, 위안부 문제는 한-일간의 외교 현안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의 예산을 활용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존엄의 회복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국내 사안으로 축소되게 된다. 1995년 아시아여성기금 땐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는 주체가 일본 정부였다면, 12·28 합의에선 그 주체가 한국 정부다. 아베 총리 입장에선 지난 20여년 동안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명예에 큰 오점을 남겨온 위안부 문제를 한국의 국내 문제로 축소해 버리는 성과를 얻게 된 셈이다. 앞으로 일본은 소녀상 이전을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한국 정부를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이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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