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다 도모미 신임 일본 방위상이 4일(현지시각) 도쿄 방위성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이나다 도모미(57) 방위상이 정식 취임 첫날부터 일본의 지난 침략전쟁을 사실상 부인하는 견해를 밝히면서 잠잠해져 가던 동아시아 역사 갈등에 불을 붙였다. 중국 등 주변국 반발은 물론 일본이 집요하게 요구해 온 한-일 정보보호협정 체결 등 현실적인 외교 현안에도 파장이 예상된다. 4일 방위성 출입 기자단과의 첫 기자회견에서 일본 기자들은 이나다 방위상의 역사인식을 시험하려는 듯 ‘지난 전쟁이 침략전쟁이냐’는 질문부터 던졌다. 이나다 방위상이 “개인적 입장을 밝히는 자리가 아니다”며 피해가려 했으나, 기자들은 ‘군사조직인 자위대의 톱인 방위상에게 묻는 것이다’, ‘방위상은 과거 전쟁에 대해 그게 침략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말할 필요가 있다’, ‘방위상이 과거를 어떻게 인식하고 군을 통제하는가는 현실적 문제와 연결된다’,‘중국, 한국, 서구 지도자와 만나면 이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며 끊임없이 압박을 이어갔다.
결국 이나다 방위상은 중일전쟁과 2차대전 등에 대해 “침략인지, 침략이 아닌지는 사실이 아니라 평가의 문제”라며 사실상 침략 전쟁이 아니라는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아베 총리도 2013년 4월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침략엔 정해진 정의가 없다”는 인식을 밝힌 뒤, 그해 12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이듬해 고노 담화를 검증하는 등 역사 수정주의적인 정책을 시행한 바 있다. 이나다 방위상은 또 한-일간 첨예한 외교 현안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평소 소신대로 ‘강제성이 없었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놓았다. 한-일 안보 협력을 중시한다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입장에선 최악의 인사를 단행한 셈이다.
일본 방위상이 이런 견해를 밝힘에 따라 중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악영향이 우려된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12·28합의와 한-미-일 3각 동맹 강화로 정책 선회를 한 박근혜 정권 기간 동안에는 한-일 관계에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8월 광복절 경축사에서 침략 전쟁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식민지배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은 ‘아베 담화’에 대해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는 수준에 그쳐 사실상 수용하는 모양새를 내비췄다. 이나다 방위상도 이날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내 견해는 지난해 총리가 내놓은 70년 담화(아베 담화)의 인식과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 당국자들은 이나다 방위상에 대해 “일단 두고 보자”며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국방부 당국자는 “이나다 방위상이 (앞으로) 국가 현안을 좀 더 폭넓게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당국자는 “이나다 방위상은 안보 분야의 비전문가이기 때문에 실제 방위정책에 영향을 끼치긴 힘들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이나다 방위상이 취임 첫날부터 덜커덕 거리는 모습을 보이자, 그의 방위상 임명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일본 내 여론이 더욱 힘을 받을 전망이다. 일본에선 이나다에 대해 극우적 역사인식 외에 방위 분야 문외한이라는 점 등 능력에 대한 의문을 더 크게 제기하고 있다. 임명이 정해진 뒤부터 “제대로 국회 답변이나 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중-한과의 교섭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 등이다.
아베 총리가 이나다를 방위상에 임명한 것은 내각에 자기파를 추가하려는 정치적 이유가 컸다. 이나다 방위상도 이날 회견에서 자신의 강력한 후원자인 아베 총리의 임기 연장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이제훈 기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