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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간토학살 93주년, 70년 동안 이어지는 조선인 위령제

등록 2016-09-01 16:14수정 2016-09-01 21:24

[르포] 지바현 후나바시시 조선인 희생자 추모식
1일 지바현 후나바시시의 마고메영원(공동묘지)에서 진행된 간토대지진 93주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참석한 한 동포가 추모비에 헌화하고 있다.
1일 지바현 후나바시시의 마고메영원(공동묘지)에서 진행된 간토대지진 93주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참석한 한 동포가 추모비에 헌화하고 있다.
뙤약볕이 내리 쬐던 1일 오전 11시57분. 지바현 후나바시시의 마고메영원(공동묘지)에 모인 150여명의 재일동포들이 동요 <고향의 봄>을 배경으로 일제히 일어나 긴 묵념을 올렸다. 93년 전인 1923년 9월1일 간토대지진이 발생한 시간에 맞춰 당시 억울하게 학살당한 동포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추모제가 열린 것이다.

해마다 9월 초가 되면 일본 간토 지역에선 대지진 이후 일본 군·경과 자경단에 의해 학살된 조선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그러나 이곳 후나바시 행사는 큰 특징이 있다. 일본인들이 중심이 돼 진행되는 다른 행사와 달리 주체가 총련이 중심이 된 동포 사회이기 때문이다. 간토대지진과 관련해 2편의 다큐 영화를 만든 오충공(60) 감독은 “해방 직후 동포들이 당시 학살된 희생자들을 위해 위령비를 만들고 유골까지 발굴해 추모 행사를 이어오고 있는 곳은 이곳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마고메영원에 우뚝 서 있는 추모비는 해방 이후 불과 2년 만인 1947년 3·1절을 맞아 동포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만든 것이다.

1일 추모식을 위해 조계종 관음사 주지 대정스님이 참석해 독경을 했다.
1일 추모식을 위해 조계종 관음사 주지 대정스님이 참석해 독경을 했다.
추모비가 이곳으로 옮겨지게 된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애초 이 비석은 학살이 이뤄졌던 옛 후나바시화장장 근처에 있었다. 그러나 토지 문제 등으로 비석을 이전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된다. 동포들은 비석을 이전하며 당시 숨진 이들의 유골을 찾기 위해 애를 쓰지만,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구원의 손을 내밀어 온 것은 한 일본인이었다. 그의 부친이 “집의 불단 아래 조선인들의 뼈를 묻은 지도를 숨겨뒀다. 나중에 유골을 찾은 이가 생기면 장소를 알려주라”는 말을 남겼기 때문이다. 지도에 나온대로 지역(현재 후나바시역 앞의 아마누마벤텐이케 공원)을 파보니 과연 유골을 찾을 수 있었다. 이후 동포들은 후나바시와 협상을 통해 1962년 현재 위치로 추모비를 옮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기석(81)씨의 부친 이진호(1889~1956)는 당시 조선인 학살의 목격자다. 경상남도 밀양 출신인 그의 부친은 24살 때 현재 도쿄 쓰키시마 부근에서 지진을 만났다. 지진 직후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탄다”는 소문으로 군·경, 자경단에 의해 조선인 6000여명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경찰은 ‘조선인 보호’를 명목으로 수많은 조선인들을 당시 일본 육군 기병연대가 있던 지바현 나라시노로 집단 수용한다.

그러나 수용소에서 또다른 학살이 기다리고 있었다. 군이 수용자 가운데 ‘불령선인’들을 뽑아 직접 죽이거나, 주변 마을에 사람을 넘겨 학살을 종용한 것이다. 이씨는 “부친은 학살 소문을 듣고 수용소를 도망쳐 나와 겨우 목숨을 건졌다”고 말했다.

1일 추모비에 분양하는 재일동포들과 일본 시민들
1일 추모비에 분양하는 재일동포들과 일본 시민들
후나바시의 추모식은 1947년 이후 70년째 이어지는 중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일본 쪽 대표 호리야마 히사시(고교 교사)는 “일본에선 오늘이 방재의 날로 정해져 있지만 많은 조선인들이 학살됐다는 것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두번 다시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 일본인들은 이 역사를 묻어버려선 안 된다”고 말했다. 치바 조선학교 중학교 3학년생인 박유향(15)양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일본의 민족적 차별에 당당히 싸워가겠다”고 말했다.

후나바시(지바)/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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