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4월18일 베이징 중난하이의 마오쩌둥 자택에서 마오쩌둥(왼쪽) 중국 주석과 김일성 북한 주석이 만나 서로 손을 잡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75년 4월18일 베이징의 중난하이 마오쩌둥 주석 저택. 사진 속의 만년의 마오와 김일성 주석은 활짝 웃으며 뜨겁게 손을 맞잡고 있다. 그러나 지금껏 자세히 공개된 적 없는 두 인물의 마지막 대화는 어떤 내용이었을까.
중국 화둥사범대학의 선즈화 교수가 이 물음에 대해 결정적인 해답을 제공할 수 있는 자료를 발굴해 신작 <최후의 ‘천조(天朝)’-마오쩌둥과 김일성 시대의 중국과 북한>을 통해 공개했다고 <마이니치신문>,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들이 1일 보도했다.
둘의 만남이 이뤄진 것은 베트남에서 호치민이 미국을 상대로 결정적 승기를 잡고, 이웃 캄보디아에서 폴 포츠의 공산정권이 친미 정권을 쓰러뜨리던 격변의 시대였다. 김 주석은 이런 사실을 언급하며 “그들(베트남)의 승리는 우리들의 승리와 같은 것”이라며 자신도 한반도에서 같은 방식의 무력통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마오 주석에게 전하려 했다. 그러나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역사적 방중으로 미-중 ‘데탕트’의 길을 연 마오 주석은 김 주석의 이런 말을 계속 회피하며 “정치적인 얘기는 더 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는다. 결국 둘의 대화는 30분만에 썰렁하게 끝난다.
선 교수는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회담에서 김 주석이 제2차 한국전쟁을 하겠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방중 전에 조선노동당 내에서 이 문제에 대해 발언한 적이 있다. 실제 생각한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무력통일의 꿈을 버리지 못한 김 주석에게 마오가 냉랭한 반응을 보이며 양자간 회담이 사실상 실패로 끝난 셈이다.
한반도 전문가인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학 명예교수는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975년 중국이 북한이 원했던 무력통일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관측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었다. (이 회담으로) 김 주석은 중국이 중요한 때에 결국 자신들을 돕지 않으리라는 것을 통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북한은 이후 중국을 벗어난 자주국방 노선을 걷게 되고, 이는 결국 현재까지 이어지는 핵개발이라는 난제로까지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