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아키히토 일왕이 생전 퇴위 의향을 밝히는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는 장면. 도쿄/연합뉴스
‘생전퇴위’ 의향을 밝힌 아키히토 일왕을 위해 일본 정부가 법률에 해당하는 ‘황실전범’을 개정하는 대신 특별법을 만들어 대응할 전망이다. 또 관심을 모았던 여성 일왕에 대해선 당분간 논의하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에선 지난 7월 초 일왕이 생전퇴위 의향을 주변에 알렸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에 맞게 황실전범을 개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어져 왔다. 이런 흐름 속에서 <산케이신문>이 5일 정부가 일왕의 생전퇴위에 대해 “(황실전범 개정이 아닌) 특별법 제정으로 가능하게 하도록 검토에 들어갔다”고 전한 뒤, <요미우리신문>이 6일 같은 취지의 보도를 했고, 8일 <아사히신문>도 1면 머릿기사로 “정부가 퇴위의 뜻을 강하게 암시한 천황의 마음을 받아들여 현재 천황만 생전퇴위가 가능하도록 특별조치법을 정비하는 방향으로 검토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신문은 특별법 제정 시기와 관련해선 “이르면 내년 통상국회 때 법안을 제출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일본 주요 언론들이 같은 내용을 거듭 보도한 것을 보면, 아베 정권이 이번 기회를 활용해 생전퇴위는 물론 여성 일왕 허용 등 ‘천황제’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를 진행할 의사가 없음은 분명해졌다. 신문은 아베 정권이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에 대해 “황실전범 개정논의가 헌법문제에까지 번져 논의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생각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아베 총리는 8월 초 주변에 “황실전범 개정을 하긴 싫다”는 이야기를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일왕의 생전퇴위 의사 표명이 자신이 “필생의 과업”이라고 언급해 온 개헌 논의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특별법 제정은 퇴위를 원하는 일왕을 배려해 신속히 논의를 진행해 가겠다는 배려라는 측면도 있다. 이런 속내를 말할 수 없는 일본 정부는 앞으로 “퇴위의 자유를 (법 개정을 통해 공식적으로) 인정하면 즉위를 거부할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논의와도 연결될 수 있다”며 이번 논의가 자칫하면 천황제 자체를 위기로 몰고 갈 수도 있다는 논리를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이와 관련해 8일 아세안정상회의가 열리는 라오스에서 기자들과 만나 “(생전퇴위와 관련해) 어떤 게 가능할지 분명히 생각해 가겠다. 여러 의견을 넓게 들어 조용한 가운데 논의를 진행해 갈 것”이라는 원칙론만 밝혔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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