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해묵은 난제인 러-일 평화조약이 북방영토(쿠릴열도 남단의 4개 섬)에 대한 일본의 ‘한 발 양보’로 체결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23일 1면 머릿기사로 복수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정부가 러시아와 북방영토 문제 교섭에서 하보마이, 시코탄 등 2개 섬을 넘겨 받는 것을 (협상) 최저 조건으로 한다는 방침을 굳혔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어 정부가 “평화조약을 체결할 때 (다른 2개 섬인) 에토로후와 구나시리 등 ‘4개 섬 귀속’ 문제를 문제 해결의 전제조건으로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검토하고 있다”며 “아베 총리는 이런 방침으로 정상간 교섭에 나서 영토 문제를 포함한 평화조약 체결의 실마리를 찾겠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은 지금까지 북방영토에 대해 ‘4개섬 일괄 귀속’이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아베 신조 총리는 현실적 ‘국익’을 위해 국내적 비판을 부를 수 있는 결정을 내린 셈이다.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은 1956년 2차 세계대전 이후 중단됐던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는 ‘소-일 공동선언’을 발표하면서, 양국간 영토 분쟁이 있는 북방영토 4개 섬 가운데 “하보마이 군도와 시코탄은 향후 평화조약 체결 뒤 일본에 넘겨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2개 섬엔) 러시아에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말하는 등, 러시아 지도자들은 2개 섬 반환에 대해선 긍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일본 정부가 ‘4도 일괄 반환’을 포기하고 ‘2도 우선 반환’으로 전환한다면, 70년간 난제였던 러-일 평화조약 체결은 단숨에 체결이 가능해진다.
이와 관련해 아베 총리는 지난 5월 러시아 소치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나 “정체된 교섭에 돌파구를 열기 위해, 지금까지 발상에 매달리지 않는 ‘새로운 접근’을 통해 교섭을 정력적으로 이끌어 나가기”로 합의했다. 이후 아베 총리는 지난 2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푸틴 대통령과 다시 만나, 11월 페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APEC), 12월15일 고향인 야마구치현 나가토시 등에서 연속적으로 러-일 정상회담을 열자는 약속을 받아냈다.
문제는 미국의 반발이다. 아베 총리는 러-일 접근에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 미국을 안심시키기 위해 21일(현지시각) 뉴욕에서 존 바이든 미 부통령을 만났다. 21일치 일본 외무성 보도자료를 보면, 아베 총리는 “일-러간 최대 현안인 북방영토 문제를 진심으로 해결하고 싶다. 푸틴 대통령과 대화를 통해서가 아니면 해결할 수 없다”고 바이든에게 말했다. 결국 바이든 부통령은 “아베 총리를 믿는다. 앞으로도 양국(미·일)이 긴밀히 의사소통을 해가자”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4도 일괄 반환’을 포기한 것이라면, 일본 우익들로부터 집중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 정부는 보도내용을 부인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23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4도 귀속 문제를 해결해 평화조약을 해결해 간다는 정부의 기본방침은 변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끈질기게 교섭을 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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