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도쿄 고토구의 지진 체험학습 시설인 ‘소나 에리어 도쿄’ 직원 미사카 미호코가 일상용품을 이용한 방재용품 활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금은 12월 겨울이고, 현재 시각은 오후 6시입니다.”
지난달 28일 오전, 도쿄 고토구 아리카케에 위치한 도쿄린카이(임해)광역방재공원 내 지진 체험·학습 시설인 ‘소나 에리어 도쿄’. 체험 첫 코스인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자 안내 직원 미사카 미호코가 현상황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현재 당신은 지하철역 앞 백화점 10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습니다. 곧, 도쿄에 직하 지진이 발생하게 됩니다. 대비해 주세요.”
설명이 끝나자마자 엘리베이터 모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지금 막 큰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여진 가능성이 있습니다. 침착하게 행동해 주세요”라는 다급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느닷없이 ‘규모 7.3, 최대 진도 7(한국기준으론 12)’의 수도 직하 지진이 발생한 도쿄의 겨울 밤 거리에 홀로 남겨지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의 목숨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진으로 파괴된 도쿄 시가지 모형. 체험자는 이 거리를 지나며 안전한 대피와 관련된 여러 질문에 답해야 한다.
지난달 12일 경주 지진 이후 한국과 세계 최고 수준의 지진 방재 시스템을 갖춘 일본을 비교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이 단기간에 일본과 같은 선진적인 지진 대비 시스템을 갖추는 건 불가능하지만, ’방재교육’ 강화 등은 당장이라도 시행할 수 있는 과제로 꼽힌다.
‘지진 대국’인 일본에서 방재교육 중요성이 다시 한번 불거진 건 1995년 1월 일본을 강타한 한신 대지진 이후다. 일본 정부는 방재교육을 한층 더 강화함과 동시에 “도쿄에서도 이런 지진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판단에 따라 도쿄만과 면한 아리아케 지역에 이 방재공원을 건설해 2010년 7월 문을 열었다. 실제로 이 시설엔 도쿄 등 수도권 지역에 ‘진도 6강’ 이상의 대형 지진이 일어날 경우 ‘긴급재해 현지 대책본부’가 설치돼 대응 작업에 나서게 된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평시인 현재는 이 시설에 지진 체험시설인 ‘소나 에리어 도쿄’를 운영 중이다. 지난해 이 시설을 찾은 이들은 27만여명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건물을 나선 기자 앞에 황폐화 된 도쿄 거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리 나눠준 태블릿 단말기에선 “지진이 발생하면 건물 가까이 걸어야 하나, 떨어져 걸어야 하나”(유리창이 낙하할 수 있으니 떨어져야 한다), “화재 발생시 뛰어서 피해야 하나, 침착하게 걸어서 빠르게 이동해야 하나”(화재 전파 속도가 걸음보다 느리니 뛸 필요는 없다) 등의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체험에 앞서 관련 설명을 듣고 있는 일본 시민들
특히 피난민들이 공동생활을 해야 하는 피난소의 생활 에티켓, 비닐봉지를 이용한 삼각건 만들기 등의 ’생활 팁’, 전화망 단절시 가족들이 서로의 안부를 메시지로 남길 수 있는 ‘전언 다이얼’(171번) 등의 소개가 눈길을 끌었다. 재해용품 가운데는 소변을 본 뒤 이를 고형화할 수 있는 약품도 마련돼 있다. 무라이 도시히사 부센터장은 “대형 재해가 발생하면 부상을 당하지 않은 시민들은 자위대·소방·경찰 등이 도우러 올 때까지 ‘72시간’(3일)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72시간 동안 시민들이 살아남을 수 있게 필요한 지식을 전하는 게 시설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일본에 수도 직하 지진이 발생하면 이 회의실이 긴급재해 현지 대책본부로 사용되게 된다. 다행히도 지금까지 이 시설이 대책본부로 사용된 적은 없다.
일본의 방재교육은 학교-가정-지역사회를 연결해 학생들이 각 지역의 특수한 상황에도 대비할 수 있는 쪽으로 진화되는 중이다. 3·11 참사 이후 문부과학성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재해로부터 몸을 지키는 법’ 등의 일반적인 방재교육은 받았다는 응답이 많았지만(82%), ‘우리 지역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재해’에 대해선 소수(28%)만이 긍정적 응답을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쿄도 교육위원회가 지난해 9월 만들어 각급 학교에 배부한 ‘방재노트’를 보면, ‘우리 집이나 학교 주변 위험한 장소는 어디인가’, ‘여기서 안전히 대피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등의 내용을 탐구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도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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