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 “요청하면 돕겠다” 발언에도, 한국은 7개월째 무대응
견디다 못한 유족 대표, 벌써 3번째 일본 상대 직접 협상
담당 부처 관계자 “3억 예산 요청했는데, 예산 심의에서 잘렸다”
견디다 못한 유족 대표, 벌써 3번째 일본 상대 직접 협상
담당 부처 관계자 “3억 예산 요청했는데, 예산 심의에서 잘렸다”
일본 정부가 2차 세계대전 때 희생된 군인·군속들의 유골을 수습하면서 진행하는 디엔에이(DNA) 검사 대상을 한국인 유족들에게도 확장해 달라는 요구에 대해 “한국으로부터 구체적인 제안이 있으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데도, 정부는 관련 예산을 삭감하는 등 7개월 넘게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 원호국 관계자는 12일 도쿄 참의원회관에서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회장 등 한국인 유족들과 만나 “한국 정부의 요청이 있으면 유족의 마음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여, 정부 내에서 적절한 대응책을 검토해 가겠다”고 밝혔다. 유족 대표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직접 협상에 나서기는 이번이 세번째다. 일본 정부는 지난 2월 시오자키 야스히사 후생노동상의 국회 답변을 통해 이 같은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지만, 이와 관련한 정부 제안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4월 ‘전몰자유골수집추진법’을 만들어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2차 대전의 전사자 유골 수집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에선 발굴된 유골을 유족의 품으로 돌려주기 위해 유골의 디엔에이를 추출해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유족들에겐 디엔에이 정보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유골에서 나온 디엔에이와 유족의 디엔에이가 일치하면 유골을 돌려받을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 나하시 마카비 등 4개 지역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벌인 뒤 그 결과를 보아 가며 대상 지역을 확대할 예정이다.
문제는 한국인들의 유골이다. 이희자 회장은 “일본 정부가 발굴된 유골의 디엔에이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든다고 했으니, 한국 정부는 국내 유족들의 디엔에이를 제공받아 이를 대조해 보기만 하면 된다. 일본 정부가 이미 협조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를 여러 차례 보냈는데 정부가 왜 나서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견디다 못한 이 회장은 이날 후생노동성 쪽에 “한국 정부의 대응을 기다리지 말고 일본 정부가 먼저 한국 쪽에 제안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묻기도 했다.
이 문제를 담당하는 행정자치부 ‘과거사관련 업무 지원단’ 관계자는 12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내년도 예산에 유족들의 디엔에이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비용 3억원을 신청했지만 예산 심의과정에서 관련 비용이 전액 삭감됐다”고 밝혔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일본 시민단체인 ‘전몰자 유골을 가족의 품으로 연락회’의 우에다 게이시는 “한국 정부의 요청이 없으면 일본 정부가 움직일 수가 없다. 정부가 있는데 유족들이 왜 이렇게 발로 뛰어야 하냐”고 물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