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 직원들. 직원들을 지난 5일 박물관에 날라온 폭파 위협에도 굴하지 않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왜 지금 이런 폭파 협박 엽서가 왔을까요?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난 31일 오후 도쿄 신주쿠 와세다대 근처에 자리한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WAM·이하 왐). 2005년 만들어진 이 작은 자료관은 우경화 되어가는 일본 사회에서 가장 헌신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온 단체로 꼽힌다. 자료관을 방문하면 지난 12·28 합의의 문제점, 일본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서 사라져 가는 위안부 기술 등에 대한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다. 지난 7월부터는 버마 전선에서 위안부로 동원된 이들에 대한 특별전인 ‘지옥의 전장·버마의 일본군 위안소’도 진행 중이다.
와타나베 미나 자료관 사무국장은 “자료관에 ‘폭파한다’는 협박이 담긴 엽서가 전해져 온 것은 지난 10월5일이었다”고 말했다. 9월30일 ‘신주쿠 우체국’ 소인이 찍힌 엽서에는 “폭파하겠다. 전쟁전시물을 철거하라. 아사히 세키호대(赤報隊)”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와타나베 국장은 그동안 “‘북으로 돌아가라’, ‘북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등의 영문을 알 수 없는 공격 메일이 온 적은 있지만 ‘폭파한다’는 명백한 폭력적 위협은 처음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적은 한국과 중국이었다. 그러나 지난 일-한 합의(12·28 합의) 이후 창끝이 이쪽(일본 사회 내부)를 향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 우익들이 내부에서 적을 찾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6월 한·일 등 8개국 시민단체 등이 위안부 관련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해달라고 신청한 사건이었다. 왐은 이 등재 신청에 일본위원회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그러자 다카하시 시로, 사쿠라이 요시코 등 일본의 우익인사들이 주로 <산케이신문>의 지면을 빌어 왐과 와타나베 국장을 실명 비판하는 칼럼을 쏟아냈다. 일본 정부는 한술 더 떠 위안부 관련 기록물 등재를 저지할 수 있도록 유네스코가 ‘제도 개혁’을 하지 않으면, 올해치 유네스코 분담금 38억5000만엔(약 420억원)을 내지 않겠다고 위협하는 중이다. 위안부의 진실을 찾으려는 한·일 시민사회의 움직임을 일본 정부와 우익 언론이 한 몸이 되어 가로막자, 일부 우익들이 ‘폭파 위협’으로 동참하고 나선 셈이다.
이 엽서가 박물관에 큰 충격을 준 것은 엽서를 보낸 이가 스스로를 ‘세키호대’라고 칭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키호대는 1987년 5월3일 효고현에 있는 아사히신문사 한신 지국에 침입해 편집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2명의 기자에게 총을 쏴 이 가운데 한 명을 숨지게 한 우익단체를 뜻한다. 일본 언론사에 기록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연상시키는 이름을 내세워 박물관에게 앞으로 폭력을 행사하겠다고 위협한 셈이다.
박물관은 일본 사회가 지난 30일 발표한 ‘언론을 폭력과 연결짓지 않는 사회를’ 이라는 제목의 성명문에서 “일본 언론 공간의 저변에는 국가 중심 사상이나 정부 비판을 하는 사람들을 폭력을 통해 공갈하고 압살하는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며 “일본의 언론 공간을 풍요롭게 해 가는 게 인권을 지키고 일본의 민주주의를 풍요롭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도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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