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오른쪽) 일본 총리가 19일 페루 리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리마/EPA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한 뒤 양국간의 핵심 현안인 평화조약 체결에 대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19일(현지시각) 오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방문한 페루 리마에서 푸틴 대통령과 만나 러-일간 경제협력, 북방영토(쿠릴열도 남단의 4개 섬) 문제 등 양국간 주요 현안에 대해 한 시간 정도 의견을 주고 받았다.
회담 이후 아베 총리는 기자들과 만나 “양국이 논의하고 있는 8개의 경제협력 항목의 구체적인 진척 상황에 대해 확인하고 12월의 푸틴의 방일, 야마구치현 나가토시의 회담에 대해 좋은 대화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러-일 관계의 핵심 현안인 북방영토를 둘러싼 영토 협상에 대해선 “물론 평화조약 문제를 포함한 논의를 했다. 평화조약에 대해 말하자면 70년 동안 하지 못했던 것이니, 그렇게 간단한 과제는 아니다. 평화조약의 해결을 위해 앞길이 보이곤 있지만, 한발한발 산을 넘어걸 필요가 있다. 커다란 한발을 나아가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이어 “푸틴 대통령과 단둘이 평화조약 문제에 대해 솔직한 의견 교환이 가능했다. 이 문제는 역시 정상간의 신뢰관계가 아니면 전진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늘 둘이 제대로 얘기하는 게 가능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며 구체적인 성과 보다는 만남 자체의 의미를 두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날 아베 총리가 되풀이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는 표현을 쓴 것으로 봐 일본이 절실히 해결을 원하고 있는 영토 협상이 일본이 원하는 방향과 속도로 진행되지 않고 있음을 드러낸 발언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일본은 2014년 3월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국제적인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를 상대로 일본의 오랜 시간 염원이었던 영토 문제 해결을 위해 정력적인 대러 외교를 진행해왔다. 구체적으로 아베 총리는 지난 5월 러시아 소치까지 날아가 양국이 협력할 수 있는 8개 항목의 경제협력 방안을 제시했고, 9월 초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다시 푸틴 대통령을 만나 12월 일본 방문을 이끌어 냈다.
러시아(옛 소련)와 일본은 1956년 2월 ‘소일공동선언’을 통해 장래 양국이 평화조약을 체결한 뒤 북방 영토를 구성하느 4개 섬 가운데 “하보마이와 시코탄을 일본에 넘겨준다”는 데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냉전 격화라는 국제 질서의 흐름과 미국의 개입 등으로 인해 일본 국내에선 양국이 합의한 ‘2도 반환’이 아닌 ‘4도 일괄반환론’이 상식처럼 뿌리를 내리게 된다. 이후 양국 사이엔 여러 차례 이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이 진행됐지만, 번번이 실패한 바 있다.
현재 러시아는 일본이 극동 지역의 경제 협력 등에 보이는 태도를 봐가면서 영토 협상 등 평화조약 체결 문제에 응한다는 입장이다. 일본이 영토 협상과 경제협력을 병행적으로 추진하길 원하는데 견줘, 양국 사이에 적잖은 인식의 차이가 있는 셈이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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