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6일 업무 오찬이 열리는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 나란히 들어서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한껏 기대를 부풀렸던 러-일 정상회담이 결국 영토 문제에 대한 양국간 입장 차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썰렁한 분위기로 끝나고 말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15~16일 이틀간의 정상회담을 마친 뒤, 오후 3시30분부터 도쿄 총리공저에서 기자회견에 임했다. 아베 총리는 푸틴 대통령을 일본어로 친한 친구를 부를 때 사용하는 ‘기미’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일본이 70년 넘게 열망해 왔던 북방영토(쿠릴열도 남단 4개 섬) 문제에서 성과가 있음을 강조하려 애썼다. 아베 총리는 “다음 세대 젊은이들에게 일본과 러시아가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함께 노력을 쌓아가야 한다. 일본과 러시아가 협력해 윈-윈 관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이어 “4도 공동경제개발을 위한 특별한 제도에 대해 교섭을 개시하는데 합의했다. 평화조약으로 가는 중요한 한 걸음”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도 양국간 경제협력 등을 통해 “평화조약 체결을 위한 신뢰 조성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회담 직후 발표된 ‘언론을 향한 성명’을 보면, 이번 회담의 성과는 공동경제활동을 위한 협의 개시, 옛 섬 주민들이 성묘 등을 위해 비자 없이 4개 섬을 출입할 수 있는 절차 간소화 등 2개로 정리된다.
그러나 화기애애하던 기자회견 분위기는 <산케이신문>이 푸틴 대통령을 향해 “일본에 유연성을 요구했는데 당신이 보여줄 수 있는 유연성은 뭐냐”는 공격적인 질문을 하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푸틴 대통령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양국간 역사 얘기를 해야한다”며 △1905년 러일전쟁을 통해 러시아가 일본에게 패해 북위 50도 이하 사할린 영토를 내준 점 △당시 많은 러시아인들이 고향을 떠나 쫓겨났던 점 △1956년 소-일 공동선언 때 미국이 양국간 평화협정을 막기 위해 위협했던 점 △4개 섬을 내주면 미군 주둔 위험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러시아 극동함대에 위협이 생긴다는 점 등을 10분 넘게 설명했다. 그러면서 푸틴 대통령은 “역사적인 핑퐁은 그만두는 게 좋다”고 말을 마쳤다. 러시아의 영토 주권은 2차대전의 승리의 결과라는 러시아의 인식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영토 문제에 대해 푸틴 대통령이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는 요인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첫째 친러 성향인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러시아에게 일본의 전략적 중요성이 감소했다. 또 러시아가 크림반도와 시리아 등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상황에서 영토 문제에 대해 양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강경론자들의 반발을 푸틴 대통령이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영토 문제에 대한 양국의 입장이 선명히 드러남에 따라 아베 총리가 이번 회담의 중요 성과로 강조하려던 4개 섬에 대한 러-일 양국의 ‘특별한 제도 아래서의 공동경제활동’도 구체적 결과를 내놓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이 ‘특별한 제도’를 러시아의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러-일간 조약을 통한 조처로 생각하고 있지만, 러시아에선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유리 우샤코프 러시아 대통령 보좌관은 15일 회담 직후 “공동경제활동은 러시아 법률에 기초해 실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푸틴 대통령 방일을 계기로 영토 문제 등에 결정적인 진전을 이뤄 중의원 해산 등에 활용하려는 아베 총리의 계획은 사실상 성과없이 끝났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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