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우승자는 결정된 상황이었지만 일본 도쿄 스미다구 국기관엔 엄청난 함성이 넘쳐 흘렀다.
올 들어 첫 스모 대회인 2017년 ‘하쓰바쇼’(첫 대회라는 뜻) 14일째까지 11승 3패를 기록 중인 일본 스모의 최강자 요코즈나 ‘하쿠호’에 맞서 최후의 대결에 나선 이는 13승 1패를 기록 중인 오제키 ‘기세노사토’(본명 스가와라 유타카)였다. 일본 스모는 대회 기간인 15일 동안 하루에 한 경기씩 경기를 치러 더 많은 승수를 거둔 이가 우승을 거두게 된다. 이미 하쿠호는 3패를 당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날 기세노사토가 패배한다고 해도 우승자는 이미 기세노사토로 정해진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일본 열도가 마른 침을 삼키며 이 시합을 주시하는 이유가 있었다. 기세노사토가 일본인 선수로선 19년 만에 처음으로 스모의 최고 지위인 ‘요코즈나’에 오르기 위해선 이 경기에서 반드시 승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스모협회는 요코즈나 승진 기준을 “2개 대회 연속 우승 또는 그에 준하는 성적”으로 정해두고 있다. 기세노사토는 지난 대회 12승 3패를 기록했기 때문에 만약 이번 시합에서 하쿠호에게 진다면 13승 2패의 우승이 된다. 일본인 요코즈나 탄생을 눈이 빠지게 기다려 온 일본 스모협회가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정도 성적으로는 요코즈나 승진은 다소 민망하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기세노사토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완벽한 요코즈나가 되기 위해선 일본 최강의 스모 선수인 하쿠호를 실력으로 제압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본 스모는 그동안 큰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야구, 축구에 이어 3대 스포츠로 사랑을 받고 있긴 하지만, 지난 1998년 와카노하나를 끝으로 일본인 요코즈나가 탄생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현재 일본 스모를 평정하고 있는 것은 아사쇼류(은퇴), 하쿠호, 하루마후지, 하쿠류 등 몽골 출신 선수들이었다. 일본인들은 지난 19년 동안 몽골 선수들이 ‘도효’(스모가 진행되는 흙으로 된 경기장. 씨름으로 치면 모래판)에서 보여준 괴력과 스피드에 경탄의 박수를 보내면서도 “일본인 요코즈나는 언제쯤 탄생할까”라며 아쉬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경기가 시작됐다. 하쿠호가 무서운 실력으로 기세노사토를 도효의 끝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무린가.” 경기장 곳곳에서 실망의 함성이 터져 나오는 순간 기세노사토가 괴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하쿠호의 필사적인 밀어붙이기를 강력한 허리 힘으로 버텨내더니 오른쪽 ‘스구이나게’로 하쿠호의 몸에 흙을 묻히는 데 성공한 것이다. 국기관엔 장내가 떠날 듯한 함성과 함께 하늘로 떠오른 방석이 물결쳤다.(스모장에선 최강자인 요코즈나가 패배하는 명승부가 나오면 깔고 앉고 있던 방석을 하늘로 날리는 전통이 있다)
일본 언론들은 일본 스모협회가 25일 임시 이사회를 열어 기세노사토의 승진을 정식으로 결정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날 예상대로 승진이 확정되면 기세노사토는 72대 요코즈나로 등극하게 된다. 기세노사토는 경기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눈물을 떨구면서 “열심히 지금까지 해 온 대로 자신의 스모를 믿고 여러분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겠다”고 말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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